첫화면으로

 

  불소화 - 침묵의 벽을 깨다  (1/4)

  마크 디젠도프

 

 

 

 

 

 

 

 

 

 

 

  이 글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과학사회학자 브라이언 마틴(Brian Martin)이 편집한 책 <전문가들에게 도전한다, Confronting the Experts>(뉴욕주립대학출판부, 1996년)의 제3장 "Fluoridation: Breaking the Silence Barrier"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필자 마크 디젠도프(Mark Diesendorf)는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다채로운 연구 및 과학운동에 종사해온 오스트레일리아의 과학자로서, 70여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네권의 책을 편집하였으며, 대중매체를 위해 많은 글을 기고하고, 강연과 인터뷰를 해왔다. 1994년 이래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의 '인간생태학 프로그램(Human Ecology Program)'을 맡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수돗물불소화를 우려한다> 2001 전국대회 자료집
인쇄용(hwp)


머리말 - 이른바 "과학적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슈

  호주의 뉴사우스 웨일즈 남쪽 해안에 위치한 작은 마을 모루야의 마을회관, 이 마을에 공급되는 물을 불소화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토론하는 공개집회가 열리고 있다. 나는 단상에 앉아 내 연설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연단에는 호주치과의사협회(Australian Dental Association)의 불소화 캠페인을 주도하는 사람 하나가 서있다. 그는 청중들에게 어떤 수돗물에는 천연적으로 불소가 함유되어 있으며(그건 사실이다), 따라서 불소화는 안전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독립적인 과학자로서 치과 및 의학계의 기성체제에 반대하고 있는 내가 불소화가 건강에 해로우며 그 혜택 또한 과장되어 왔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과연 청중들은 내 말을 이해하고 믿을까? 연단의 치과의사는 만약 불소화가 유해하다면 인류는 천연불소에 의해 이미 멸종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지와 속임수 앞에서 나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영어권 국가에서 수돗물불소화는 치과의사, 의사, 보건공무원들에 의해 공중치과보건의 초석으로 제시되며, 치과의사 및 의사협회와 보건기관들은 이를 지지해왔다. 불소화는 막대한 혜택을 주면서 위험은 없는 것, 심지어는 '과학적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불소화란 천연적으로 불소가 함유되어 있는 수돗물에 첨가를 하여 농도를 1ppm, 즉 물 1리터 당 불소 1mg으로 증가시키는 것을 말한다. 천연적으로 불소가 1ppm 혹은 그 이상 함유되어 있는 지역도 있지만, 대부분의 수돗물에서 천연불소의 농도는 1ppm의 1/10-1/5이다. 따라서 불소화는 사람들의 불소 섭취량을 전체적으로 크게 증가시키게 된다.

  수돗물불소화의 목적이라는 것이 치과, 의학, 공중보건 문헌에서 '치아우식증'이라 부르는 충치의 확산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박테리아를 죽여서 마실 물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염소화와는 달리, 불소화는 치료를 목적으로 고안되었으며 따라서 대중에게 일괄적으로 주입하는 투약으로 간주될 수 있다. 수돗물불소화를 윤리적으로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일부 반대자들은 불소화를 강제적 의료행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나 같으면 보다 정확하게, 피하면 오히려 비싼 값을 치르는 투약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불소를 원치 않는 사람은 생수를 사 마시거나 마실 물에서 불소를 제거하는 장치를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리적 이슈 이외에도, 누가 불소화를 통제하고 재정지원을 하며 득을 보게 되는가라는 정치적 이슈가 있고, 치의학적 효과와 건강상 위험의 판단, 환경적 영향이라는 과학적 이슈가 있다. 연구전문 과학자로서 나는 주로 과학적 이슈에 집중하는 한편, 윤리적·정치적 맥락에도 관심을 쏟아 왔다.

  수돗물불소화는 195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기타 몇몇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서유럽과 대부분의 비영어권 국가에서 불소화는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1)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 핀란드에서는 시행이 중단되었는데, 주된 이유는 이미 알려졌거나 혹은 잠재적인 건강상의 위험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인공적으로 불소화된 물은 전세계 인구의 불과 몇 퍼센트만이 마시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불소화율이 아주 높은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언론에서 환경, 보건,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일반적으로 주류의 '전문가들'이 '반정부적인 사람들'보다 더 호의적으로 보도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절대적 다수의 국민에게 반대자들은 괴짜들이거나, 극우파 혹은 건강편집광들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예는 불소화뿐이다. 이 놀라운 프로파갠더의 성공은 일차적으로 의학 전문가들의 권위를 팔거나 '반정부적인' 치과의사, 의사, 과학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함으로써 거둔 것이었다. 반대자들에 대한 상투적인 이미지의 조작은 과학전문지와 매체가 불소화에 비판적인 자료를 출판하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침묵의 벽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불소화 반대운동에 특별히 요구되는 실천사항이다.

  이 글에서 나는 내가 어떻게 이 문제에 관여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친불소화론에 존재하는 내적 모순과 허위보도를 발견했는지, 어떻게 불소화에 대항하여 캠페인을 벌였는지, 주류의 '전문가들'이 어떻게 나를 탄압하려고 했는지를 설명하고, 결론으로 몇가지 교훈을 제시하겠다. 상자 속의 글들은 각각 (1)불소화의 권력구조, (2)불소가 치아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다룬다. 또 불소화에 대한 나의 비판을 요약하는 부록을 뒤에 덧붙였다.
 

  불소화 논쟁에 참여하게 되다

  엔지니어와 시인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원칙적이면서 동시에 총체적인 접근으로 문제해결을 하도록 요구받았다. 따라서 내가 사회정의, 환경보호, 생활환경 속의 화학물질과 방사선전리의 건강상 위험 등 폭넓은 흥미와 관심을 가진 연구전문 과학자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록 박사학위 연구는 대부분 응용수학의 한 특정 주제에 관한 것이었지만, 나의 잇따른 연구는 수학 및 다른 자연과학의 광범위한 실용적 응용에 두루 걸쳐있다. 우선, 영국 런던의 임페리얼 칼리지 박사연구원으로서 우주과학에 속하는 지상정보와 위성정보의 분석을 수행했다. 그런 다음 호주국립대학의 연구원이자 교수로 있으면서 곤충의 후각 및 시각 메커니즘 분야에서 신경생물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했고, 스스로 형태를 변화하는 생물학적 촉매들의 협동효과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를 추진하기도 했다. 1975년에서 1985년까지는 '과학 및 산업연구회(The Commonwealth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Organisation, CSIRO)'(2)의 수학 및 통계 분과에서 전기 그리드를 이용한 발전(發電)계획, 풍력발전의 경제적 가치 등에 관한 일을 하였다.

  이러한 폭넓은 경험은 불소화와 같이 여러 학문분야가 중첩되어 있는 공공이슈를 대하는 데 큰 값어치를 발휘했다. 나는 내 박사학위 논문이 수소폭탄제조 과학자들에 의해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는데, 이 충격이 내가 공공이슈에 발을 들여놓는 데 상당한 자극이 되었다. 과학적으로 단련되고, 학문분야가 중첩된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해준 이 경험은 1969년이래 자연스럽게 과학과 사회라는 이슈로 나를 데리고 갔다.(3)

  1970년대의 대부분은 호주 캔버라에 있는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학회(The Society for Social Responsibility in Science, SSRS)'의 부회장 혹은 이사로 일했다. 그 기간 중 SSRS 회원은 약 200명으로 대부분 과학자와 지식인들이었다. 학회의 목표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결과와 함의를 정책결정자, 과학자,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이사로서 나는 조직의 거의 모든 활동--대부분 환경 이슈들이었다--을 개괄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내가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분야들--현대 의학 비판(4), 새로운 공공보건 및 공동체 보건운동의 지지(5), 대체에너지(6)--을 소개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돗물불소화의 부작용으로 고통받아 왔다고 믿는 사람들이 가끔 SSRS로 편지를 보내왔을 때, 당연히 나는 이 문제를 더 깊게 조사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과학문헌을 찾다

  1970년대 중반에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연구전문 과학자로서 자연히 사람들이 주장하는 불소화의 혜택과 건강상의 위험에 관한 과학적 문헌부터 꼼꼼히 살펴보았다. 또한 불소화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치과와 의학분야의 찬성자들이 주장했기 때문에, 치과, 의학, 과학 학술지의 오리지널 논문들을 살펴봐야지 공식기관의 논평이나 조사보고서에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친불소화론의 기본적 입장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불소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나라에는 불소화가 충치를 엄청나게 감소시킬 뿐 아니라 전적으로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관공서발행 전단, 소책자, 보고서들이 많이 있다. 호주에서는 이러한 문서들이 주로 호주치과의사협회(ADA), 국립보건 및 의학연구위원회(National Health and Medical Research Council, NH&MRC) 그리고 주(州) 보건국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1970년대에, 안전성 주장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씌어진 의학 및 과학논문들을 참고문헌으로 제시한 공공기관의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치의학적 효과에 관련해서, 불소화 지지자들은 '불소화의 아버지' 딘(H. T. Dean) 등이 미국의 천연 불소화 지역의 충치발생을 조사한 초기연구를 인용했다. 이들은 또한 1940년대 중반에 북미의 여러 도시에서 시행된 초창기 수돗물불소화 실험을 자기들 입장의 토대로 삼고 있었다. 학술지의 논문들을 읽고 나는 이 연구들이 정보를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통계학적 분석을 결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많은 '고전적' 연구들의 과학적 수준은 고등학교 수준이지 대학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연적이든 인위적이든 불소화의 혜택을 보고하는 연구가 하도 많다보니 처음에는 연구결과들이 진짜 맞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새로운 증거로서 비불소화 지역에서의 충치감소와 치아에 대한 불소의 활동 메커니즘이 밝혀지면서 그런 생각을 재고하게 되었다.(7)(아래 참조)

  불소화의 건강상 위험에 관한 오리지널한 의학 및 과학문헌을 찾기는 힘들었는데, 그것은 그런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소화 지지자들의 주장 때문이었다. 그들의 팜플렛과 보고서들은 불소 때문에 고통을 당할 정도라면 불소화된 물을 욕조 한통 정도로 마셔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이 주장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이 주장은 단숨에 다량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급성효과와 소량을 수년 수십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만성효과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소화된 물을 마셨을 때 그중 약 절반의 불소가 (정상기능이라고 할 때) 신장에서 걸러지고 나머지는 뼈로 들어가 죽을 때까지 축적된다. 그런 뼈는 점점 무거워지지만 부서지기는 더 쉬운 상태가 된다는 것이 현재 널리 인정되고 있다. 정상적인 생애를 누린다면, 불소화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뼈에는 일생 동안 욕조 가득 들어있는 불소화된 물에 녹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불소가 축적될 수 있다.

  불소화가 뼈와 인체의 다른 부분들에 끼치는 위험에 관한 문헌을 찾을 때 불소화 반대운동 관련 책과 미간행 보고서들이 도움이 되었는데, 거기에는 유용한 참고문헌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 또한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했다. 왜냐하면 일부 풀뿌리 차원의 불소화 반대운동은 그들 나름의 전통에 묶여있기 때문이다.(8) 그러나, 나는 곧 뼈와 관절의 질환인 골격불소증이 세계의 여러 천연적으로 불소화된 지역에서 만연되어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몇몇 학술논문들을 발견했다.

  골격불소증은 관절염과 증상이 비슷하다. 관절염처럼 어떤 경우에는 불구가 될 수도 있다. 인도 등 여러나라의 천연적으로 불소화된 지역에서 골격불소증은 잘 알려진 공중보건 문제인데, 특히 고령층에서 그러하다. 인도에서는 심지어 불소농도가 0.7ppm밖에 안 되는 마을들에서도 골격불소증이 발견되기도 한다.(9) 그러나, 수돗물불소화 제창자들은 흔히 골격불소증은 불소농도가 8ppm 이상으로 매우 높은 곳에서만 발견되는 것처럼 거짓된 인상을 퍼뜨린다.(10) 0.7-2ppm에서도 골격불소증이 나타난다는 연구결과와 맞닥뜨리면 그들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특이한 혹은 별난 지역이라는 꼬리표를 달려고 한다.

  그밖에 내가 발견한 여러 편의 논문은 인위적으로 불소화된 물과 불소정제에 대한 불내증(不耐症) 혹은 과민반응을 보고한 의사와 치과의사들의 연구성과였다. 과민반응에는 피부발진, 위통,  신경증상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반응들에 대한 임상보고서들은 '맹검법'을 통해 조사된 것이었다. 즉, 환자들이 자신이 언제 불소를 섭취하고, 언제 플라시보(僞藥)를 섭취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사된 것이었다. 이러한 반응들에 대하여 적절히 설계된 대규모의 역학(疫學)조사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 행해진 한 실험적 연구는 인구의 약 1%정도가 이러한 민감성 체질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11)

  전문적인 치과문헌에서는 나이 어린 아동들이 불소를 섭취할 경우 치아에나멜을 형성하는 세포가 손상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치아불소증으로 알려진 특이한 치아반점들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음을 나는 발견하였다.(12) 그러나 치아불소증이 생리학적 손상을 가리키는 명백한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불소화 옹호자들은 이를 단지 '미용상'의 효과로 묘사한다. 이런 태도는 내게, 잘 알려진 질병에 대한 공개적인 인정이 아니라 영악한 상술처럼 보인다.

  나의 연구가 이 단계에 이르자, 공식적인 친불소화 보고서와 소책자들이 불소화의 안전성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중요한 과학 및 의학논문을 무시하거나, 말도 안 되는 근거로 폐기했거나, 아니면 내용을 왜곡해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러한 사리에 어긋난 행위들 때문에 나는 불소화에 더욱 구미가 당겼고, 과학의 공익성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관련해서 수돗물불소화의 문제에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불소화에 관계하여 뭔가를 해야겠다는 내 결심은 '타스마니아 로열 커미션(Tasmanian Royal Commission, TRC)'(13)의 보고서를 읽고 더욱 강화되었다. TRC 보고서는 부분적으로 인종주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골격불소증에 관한 논의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병을 '원주민'에게만 발생하며 따라서 (백인) 호주인들에게는 관계가 없는 질병으로 분류함으로써 해외의 증거를 멸시하고 있었다. 나는 방사능의 건강상 위험과 핵에너지 문제의 경우처럼,(14) 제도권의 '전문가들'이 대중과 정책결정자들을 오도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동맹자를 찾다

  호주 내 불소화 반대운동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함으로써, 나는 불소화의 안전성과 효과에 대해 의심해왔던 호주와 해외의 과학자, 치과의사, 의사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1970년대와 80년대 초, 불소화에 대한 나의 전문적, 과학적 주요 조언자는 멜버른 대학교 치과대학의 치학 연구자이자 교수였던 필립 서튼 박사(15), 캔사스 대학교 화학교수 앨버트 버그스탤러, 금속표면처리와 전기화학에 전문지식을 가진 퇴임 사업가이며, 호주의 풀뿌리 반불소화운동 대표 글렌 워커 씨였다.(16)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뉴질랜드 불소화추진위원회(Fluoridation Promotion Committee of New Zealand)'의 전 의장이었고 지금은 세계적인 불소화 반대론자가 된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존 코훈 박사와의 정기적인 서신교환이 큰 도움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캘리포니아의 의사 존 리 박사와 서신교환을 하였다. 이들과 기타 비주류의 '전문가들'은 생산적으로 정보를 상호교환하고,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있다. 우리들의 지식과 경험은 치과, 의학, 과학의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나는 정기적으로 치과 및 의학 도서관을 뒤져 불소화에 관한 논문을 출판하는 주요 학술지들을 알아냈다. 의학 및 치과 조언자들이 조금씩 도와줘 오래지 않아 기초적인 전문용어도 알게 되었다. 나는 더 나아가서 전문가들이 대중들을 향해서는 꿈에도 그렇게 할 생각이 없지만, 그들만이 보는 학술지에서는 때로는 솔직한 말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후로 이러한 솔직한 시인의 말들은 불소화에 대한 나의 출판물과 드물게 벌어지는 공개토론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다.
 

  불소화에 대한 나의 최초의 논문 발표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불소화에 대한 나의 우려를 뒷받침할 증거를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이 이슈를 제기한다면 그 즉시 괴짜, 광신자, 아니면 편집광으로 낙인찍힐 분위기 속에서 내 글을 내보낼 길이라곤 불소화에 관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의 신문이나 라디오 외에는 거의 없었다.

  한편, SSRS를 위한 나의 자발적인 작업은 당시 호주에서는 낯선 《마술총알(The Magic Bullet)》이라는 현대의학 비평지의 기획 및 편집을 하는 것이었다.(17) 뛰어난 인간생태주의자 스티븐 보이든 박사와 함께 쓴 <환경과 건강>이라는 장(章)에서 우리는 불소화를,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해 적당한 양의 비타민 C를 복용하는 것과 같은 필수적 예방의약이라기보다는 대응적 예방의약으로 보았다. 불소는 치아균열 봉합제(실란트)와 같은 대응적 처치이다. 왜냐하면 친불소화론자의 선전과는 반대로 일일 일정한 mg의 형식으로 투여되는 불소가 건강한 치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친불소화론자들이 권장하는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불소를 섭취하는데도 뛰어나게 양호한 치아를 유지하고 있다.

  《마술총알》은 폭넓은 대중과 매체의 관심을 끌었고(18)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곧이어 나는 <환경과 생활방식이 인간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전국 학술대회의 공동조직위원이 되었다.(19) 회의는 오늘날 근본적으로 환경과 생활방식에 대부분 관련되어 있는 건강문제들에 대한 의학전문가들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대중과 공동체의 건강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에 바쳐졌다.  그러한 회의를 위한 때가 무르익어 있었고, 그 결과 회의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이 대회에서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예방에 대한 면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서 나는 불소화가 건강상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예방의약 형태의 대표적인 예라고 결론지었다.(20) 적절한 맥락을 제시하며 재미있게 설명하고 불소화를 정면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발표는 잘 먹혀들었다. 아마도 호주에서 불소화의 건강상 위험을 검토하는 논문이 환경과 생활방식에 관심이 있는 공중보건전문가와 의사, 기타 보건전문가와 학자들 앞에서 발표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제한적이나마 전문가들의 침묵의 벽을 깨뜨린 이러한 성공에 고무받아, 나는 이번에는 영국왕립의사대학(British Royal College of Physicians)이 1976년에 내놓은 친불소화 보고서에 대한 비판적 리뷰를 썼다.(21) 불소화를 직접적으로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건강연구(Community Health Studies)》라는 호주공중보건협회(Australian Public Health Association)에서 발간하는 저널은 나의 리뷰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것은 공공/공동체보건 분야에서 내가 새로이 획득한 신뢰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 심사위원이 나에게 편견이 있다며 비난했으나, 그의 논평에 대한 나의 답변을 받아본 다음에 저널은 내가 쓴 리뷰를 게재하였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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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사무국  office@no-fluori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