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

 

  불소 ― 독성산업폐기물의 변신

  조엘 그리피스

 

 

 

 

 

 

 

 

 

 

 

  이 글은 미국의 저명한 환경전문잡지 Earth Island Journal 1998년 봄호에 실린 글 "Fluoride: Industry's Toxic Coup"를 우리말로 옮긴 것인데, 이 글은 원래 Covert Action Quarterly(1992년 가을)에 실린 좀더 긴 글 "Fluoride: Commie Plot or Capitalist Ploy"의 축약본이다. 필자 조엘 그리피스(Joel Griffiths)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료전문 저널리스트이며, 녹색평론 특별자료집《수돗물불소화의 문제》에 실린, 맨해튼 프로젝트와 불소화의 관련을 미국정부자료(기밀에서 해제된)를 근거로 분석한 글불소, 치아, 원자탄의 공동필자 중의 한사람이다.

 <수돗물불소화 관계 신자료집> 1999.9, 녹색평론사
<수돗물불소화를 우려한다> 2001 전국대회 자료집


  거의 50년 동안 미국의 정부와 매스컴은 불소화합물(일반적으로 그냥 '불소'라고 불리는)은 충치를 ― 특히 아이들의 ― 감소시키는 안전하고 유익한 화학물질이라고 대중에게 말해오고 있다.

  제조업자들은 그것을 치약에 첨가하고 자치체들은 그것을 시민의 먹는물속에 넣는다. 그러나 불소는 정부가 전혀 언급하지 않는 또다른 측면을 갖고 있다. 불소는 독성의 산업 오염물질인 것이다.

  수십년 동안 미국의 산업은 다량의 불소폐기물을 사람들에게 쏟아부어왔다. 환경청의 가장 최근의 평가에 의하면, 일년에 적어도 155,000톤이 미국의 공장들에 의해 대기중에 방출된다. 호수, 강, 바다에 배출되는 것은 일년에 500,000톤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량의 불소를 배출하는 공장에서 일하거나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불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지만, 일반 사람들도 면제를 받아온 것은 아니다. 불소화합물은 미생물로 분해될 수 있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환경에, 먹이사슬에, 그리고 사람의 뼈와 치아에 점점 축적된다.

  이러한 불화물의 증가가 유해한 것으로 입증된다면 산업이 받는 타격은 엄청날 것이다. 미국의 공기는 철, 강철, 알루미늄, 구리, 납, (비료에 필수적인) 인산염, 플라스틱, 개솔릭, 벽돌, 시멘트, 유리, 세라믹, 진흙을 원료로 하는 제품, 화력발전소, 그리고 우라늄 처리과정에서 배출되는 불소로 오염되어 있다.

  물을 오염시키는 불소는 유리, 농약과 비료, 강철과 알루미늄, 화학물질과 금속 ― 구리와 동, 티타늄, 초합금, 그리고 군사적으로 사용되는 내열성 금속 ― 생산과 가공업에서 나온다.

  기업과 정부는 오랫동안 불소가 안전하다고 주장할 만한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불소가 가장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물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미국 농무부는 "대기중의 불소가 세계적인 가축피해를 다른 어떤 대기오염 물질보다도 많이 발생시켜왔다"고 보고하고 있다. 산업활동으로 인한 불소가 사람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어온 증거는 적어도 1930년대부터 존재해왔다.
 

  최악의 독극물
  지각(地殼) 전체에 천연적으로 존재하는 독성이 강한 물질 ― 비소, 수은, 납과 같은 ― 가운데 불소원소는 단연코 가장 양이 많다. 보통은 이러한 물질들의 미소한 양만이 지표에서 발견되지만, 산업은 막대한 양을 채굴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 불소보다 더 많은 양으로 채굴되는 것은 없으며, 불소는 자연속에서 흔히 불화칼슘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미 1850년에 철과 구리 공장으로부터 배출된 불소가 작물과 가축과 사람을 중독시켰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접어드는 세기전환기에는 독일과 영국에서 법률소송과 부담스러운 규제가 이러한 산업의 존재를 위협하였다.

  1933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대기오염 재해가 벨기에의 뫼즈 밸리에서 일어났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몹시 심하게 병들었으며 60명이 죽었다. 불소의 위험에 관한 세계적인 지도적 권위자 카지 로흘름은 그 재해의 원인이 대기중의 불소배출에 있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의 산업확장으로 수백만톤의 불소폐기물을 환경에 방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산업계와 정부 모두에게 너무나 분명한 것이었다. 미국의 산업확장에는 불소피해로 인한 전례없는 규모의 고발과 소송이 따르리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분명하였다.
 

  골칫덩어리가 자산으로 둔갑
  1920년대에 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동안, 미국 공중보건원(PHS)은 재무장관 앤드루 W. 멜론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그는 미국알루미늄회사(Alcoa)의 창립자이자 대주주였다.

  1931년, H. 트렌들리 딘이라는 PHS의 한 치과의사가 마시는 샘물에 높은 농도의 천연불소가 함유된 서부지역 벽지에 파견되었다. 그의 임무는 사람들이 치아에 명백한 피해를 입지 않고 얼마나 많은 양의 불소를 견딜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딘은 고농도의 불소가 함유된 이 지역에서 치아가 종종 탈색되고 부식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 사람들이 평균보다 적은 충치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하였다.

  신시내티대학의 케터링 실험실은, 주로 알코아와 같은 최대 불소배출자들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재빨리 불소의 안전성 연구를 지배하였다. 케터링의 과학자이며 레이놀즈 금속의 고문이기도 한 E.J. 라전트가 쓴 책은 부분적으로는 명백히 "불소피해로 인해 발생하는 법률소송에서 산업측을 돕기 위해" 쓰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은 기본적인 국제적 참고문헌이 되었다.

  1939년, 알코아의 지원을 받은 과학자 제럴드 J. 콕스는 "물과 음식에서 불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현재의 추세가 어느 정도 역전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최초의 발언자 중 한사람이었다. 이 "명백하게 쓸모없는 부산물"이 아이들의 충치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한 사람이 콕스였다. 콕스는 실험쥐들에게 불소를 투여했고, 불소가 충치를 감소시킨다고 결론지으며 "그 문제는 증명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단호히 말하였다.

  1939년, 미국에서 수돗물을 불소화해야 한다는 최초의 공적인 제안은 의사나 치과의사가 아니라 불소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로 위협받던 회사를 위해 일하던 산업 과학자 콕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의심할 바 없이, 대부분의 불소화지지자들은 그 프로그램이 안전하며 유익하다고 진심으로 믿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무비판적인 지지로 말미암아 불소화에 대한 홍보전략이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만일 불소가 아이들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첨가되어야 할 건강증진 물질로 소개된다면,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돌팔이나 미치광이처럼 보이게 될 것이었다.
 

  알코아의 책략
  불소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회사의 이름은 알코아이고, 그 이름은 수돗물불소화의 초기 역사의 어디에나 각인되어 있다.

  1938년에 이르러 알루미늄 산업(당시에는 알코아뿐이었다)은 전시(戰時) 일정에 놓이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전투기와 폭격기를 위한 알코아 알루미늄의 생산증가 때문에 불소오염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불소는 알루미늄 산업의 가장 파괴적인 오염물질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알루미늄, 철과 강철, 인산염과 화학물질 생산자들을 상대로 한 수백건의 불소피해 소송이 전국에 쌓였다.

  대부분의 법률소송, 특히 사람의 건강에 대한 피해배상 청구들은 법정 밖에서 해결되었고, 그렇게 해서 법적인 선례가 되기를 피하고 있었다. 드물게 예외적인 한 소송에서, 연방법원이 폴 M & 벌라 마틴 대 레이놀즈 금속사건(1955)에서 오리건의 한 부부가 인근 레이놀즈 알루미늄 공장 근처에서 오는 "[불소]연무로 오염된 농작물"을 먹고 "간, 신장, 소화기능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음을 확인하였다.

  알코아와 6개의 다른 금속 및 화학회사가 그 판결을 뒤집기 위해 "법정의 친구"로 합류하였다. 결국은, 유서깊은 해결방식대로, 레이놀즈 회사가 마틴 부부의 농장을 비싼 가격에 구입함으로써 그 사건을 무산시켰다.
 

  아이들의 '친구들'
  전후의 산업 불소오염 사고는 숲에서부터 가축, 농부들, 스모그 피해를 입은 도시 거주자들에 이르기까지 허다했으나, 크게 대중화된 불소의 새로운 이미지로 인해 국민의 관심은 다른 데로 돌려졌다. 1945년,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불소화는 배후에 연방정부의 대단한 힘을 가지고 등장하였다.

  그해에 미시건주의 두 도시가 불소가 안전하게 아이들의 충치를 감소시킬 수 있는지 결정하기 위한 공식적인 "15년간의" 비교연구를 위해 선택되었으며, 불소가 그랜드 래피즈의 식수속에 투입되었다.

  1946년, 미시건에서의 15년간의 공식적 실험이 거의 시작도 못한 단계에서 미국의 도시 6개가 추가로 수돗물을 불소화하도록 허락되었다.

  1947년, 오랫동안 알코아 변호사였던 오스카 R. 에윙이 연방안전국의 국장으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그 지위는 공중보건원(PHS)을 관장하는 것이었다. 에윙의 감독 아래, 전국적인 수돗물불소화 캠페인이 공중보건원에 의해 빠르게 실현되었고, 공중보건원은 이 사업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 이후 3년에 걸쳐서 87개 도시들이 추가로 불소화되었다. 미시건주의 두 도시에 대한 연구(불소화의 안전성과 혜택에 대한 유일하게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테스트)는 절반도 끝나기 전에 포기되었다.
 

  홍보전략
  이렇게 비과학적으로 서두른 것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이유는 "대중의 요구"였다. 이 열광은 오스카 에윙의 수돗물불소화 캠페인을 위한 홍보전략가가 다름 아닌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 에드워드 L. 베르나이스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정말로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베르나이스는 "홍보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광고와 정부의 선전에 그의 아저씨의 이론들을 적용하는 데 선구적이었다. 정부의 불소화 캠페인은 그가 거둔 가장 지속적인 성공사례 가운데 하나였다.

  1928년 그의 책《프로파갠다》에서 베르나이스는 대중의 생각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에 관하여 해설을 했다. "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실제로 지배하는 세력인 보이지 않는 정부를 구성한다 … 대개는 우리가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생각이 주조되고, 우리의 취향이 만들어지며, 우리의 아이디어가 말해진다"라고 그는 썼다.

  거의 하룻밤 사이에, 베르나이스는 대중의 생각을 주조하였고, 그 결과 불소 ― 당시 쥐약과 살충제로 널리 팔렸던 ― 의 대중적 이미지는 밝은 미소의 유익한 제공자이며,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아이들에게 좋은 것으로 되었다.

  치명적이지도 않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잘 알려진 쥐약성분으로 정부가 대량의료행위를 한다는 전망은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샀다. 그러나 베르나이스의 주술(呪術)로 불소화반대자들은 괴짜들이거나 우파 미치광이로서 대중의 마음속에 영원히 각인되었다.

  1950년대에 공중보건원(PHS)은 불소화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그 이후로 전국 정수장의 3분의 2가 불소화되었고 매년 약 143,000톤의 불소가 그 정수장들의 불소화를 유지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오늘날, 불소배출을 줄이도록 되어있는 회사들은 수돗물불소화에 사용되는 불소폐기물을 도시 당국에 팔아서 비용의 일부를 회수할 수 있다.
 

  보호받은 오염물질
  1972년, 새로 구성된 환경청(EPA)은 대기의 오염원을 조사하여 보고하였다. "[산업에 의해] 흔히 배출되는 불소는 경제작물, 농장동물 … 그리고 건축물[예를 들어, 건물, 조상(彫像), 유리]을 손상시킬 수 있다 … " 그렇지만 그 보고서는 "사람에게서 불소의 영향이 발생할 가능성은 무시해도 좋을 만한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또다른 환경청(EPA) 보고서는 "… 불소배출은 … 가축과 식물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확인하였지만, "주요 알루미늄 공장에서 배출되는 불소는 사람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 물질은 식물을 말라죽게 하고, 소들을 절름발이로 만들며, 심지어는 돌에 구멍을 내지만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과학적 증거로 인해, 보호받는 오염물질인 불소의 지위가 위협받을 때마다 정부는 즉시 위원회를 임명한다. 그 위원회는 전형적으로 베테랑 불소옹호자들로 구성되며 반대자는 한사람도 포함되지 않는다. 대개 이런 위원회는 새로운 증거는 무시하고, 현상태를 재차 지지한다.

  그러나, 1983년에 "세계적인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공중보건원(PHS)의 한 위원회가 먹는물속의 불소의 안전성에 관한 자료를 검토하였고, 그들은 불소의 안전성에 대한 과장된 주장을 실제로 뒷받침하는 증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 조사단은 특히 아이들의 불소노출에 관하여 신중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한달 후 공중보건원(PHS)의 책임자 에버렛 쿠프의 사무실이 공식 보고서를 공개했을 때는 그 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결론과 권고사항이 삭제되어 있었다.

  그 대신, 당국은 이렇게 포괄적으로 말했다. "8ppm 이하의 불소수준에서 나타나는 의학적 악영향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적용할 만한 과학적 증거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위원회의 원래의 마지막 보고서는 아이들(9세까지)의 골격에 미치는 불소의 영향과 심장에 대한 잠재적 독성작용[심장손상]에 관한 정보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9세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먹는물속에 함유된 불소가 1.4-2.4ppm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권고하였다.

  1985년, 공중보건원장의 보고서에 기초하여 환경청(EPA)은 아이들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되는 먹는물속의 불소의 양을 4ppm으로 올렸다.
 

  불소와 골질환
  1990-92년, 8개의 역학적 연구가 수돗물불소화가 미국 전역에 걸쳐 모든 나이의 여자와 남자들의 골절 발생률을 증가시켜왔을지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였다.《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실린 1992년의 한 연구는 "낮은 수준의 불소가 고령층의 둔부골절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국립보건통계센터에 따르면 1957년 이후, 미국에서 남자 어린이들과 사춘기 청소년들 사이의 골절 발생률이 급속도로 증가해왔다. 국립연구위원회(NRC)는 미국의 둔부골절 발생률이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보고한다. 1991년에《미국의사협회지》는 "분명히, 이제는 수돗물불소화 문제를 재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하였다.

  불소가 발암물질이라는 증거는 이미 1940년대부터 나타났다. 1956년의 한 연방정부기관의 연구는 불소화된 도시인 뉴욕주 뉴버그에서 젊은 남자들의 뼈의 결함(아마도 악성으로 진행되기 전의 형태로 여겨지는)이 2배나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1977년, 의회의 청문회에서 정부가 암과 관련해서 불소를 조사한 적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국립암연구소(NCI)는 조사를 시작하도록 명령받았다.

  1989년 ― 12년 뒤 ― 에 끝난 그 연구는 불소가 숫쥐들에게서 골암을 발생시켰다는 "불확정적 증거"(equivocal evidence)를 발견하였다. NCI는 "증가하는 골 및 관절암 발생률에 대한 전국적인 증거는 … '불소화되지 않은' 지역이 아니라 '불소화된' 지역에서 보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고명한 불소화추진론자이며 공중보건원의 관리인 프랭크 E. 영을 의장으로 하는 새 위원회가 NCI의 놀라운 발견에 대응하기 위하여 선정되었다. 그 위원회는 "인간의 암과 불소 사이의 관계를 입증하는 증거는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골절의 증거에 대하여, 그 위원회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간단히 말하였다.
 

  관계전문가들의 의심
  환경청 선임 과학고문이며 독성학자인 윌리엄 마커스는 "불소는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기준으로도 발암물질이다. 나는 환경청이 암 관련 자료뿐만 아니라 골절, 관절염, 돌연변이, 그리고 다른 영향들에 대한 증거에 입각하여 공중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즉시 취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공중에게 허용하는 불소의 수준은 과학적으로 거짓된 정보와 조작된 보고서들에 기초한다"고 전(前) 환경청 과학자 로버트 카튼은 비판하고 있다. "사람들은 단지 물을 마심으로써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카튼은 경고한다.

  불소화가 아이들의 충치를 감소시키는가? 수년에 걸쳐서 많은 보건전문가들이 ― 특히 해외의 ― 불소의 유익한 영향은 대개 엉터리라고 확인해왔다. 그러나 흔히 공개적인 논쟁은 묵살되지 않으면 억압되어왔다.

  1980년대 초에 뉴질랜드의 가장 저명한 불소화추진론자는 오클랜드시의 치의학관계 최고관리 존 코훈이었다. 그는 불소가 치아건강에 큰 혜택이 된다는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통계를 실제로 수집해보기까지 자신을 "열렬한 불소화론자"라고 칭했다.

  "나는 … 충치 없는 아이들의 비율이 뉴질랜드의 대부분의 보건구역 가운데 비불소화지역에서 가장 높다는 것을 관찰하였다"고 코훈은 보고하였다. 뉴질랜드 보건부는 코훈이 자신이 발견한 것을 발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결국 그는 사임을 권고받았다.

  1990년, 코훈은 "수돗물불소화가 끼치는 유해작용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것에 반해서, 치아에 주는 혜택은 흔히 주장되는 것과 반대로 무시할 만한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사무국  office@no-fluori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