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

 

  불소, 치아, 원자탄

  조엘 그리피스 / 크리스 브라이슨

 

 

 

 

 

 

 

 

 

 

 

  이 글은 국제적으로 저명한 환경단체 Earth Island Institute가 발행하는 계간지 Earth Island Journal 1997-98년 겨울호에 처음 실린 것인데,《녹색평론》편집실의 권유에 따라 월간《말》1998년 5월호에 우리말 번역이 게재되었다. 이 글의 필자 조엘 그리피스(Joel Griffiths)는 오랫동안 불소화의 문제를 추적해온 의료 전문기자이며, 크리스 브라이슨(Chris Bryson)은 BBC, 맨체스터 가디언, 크리스쳔 사이언스 모니터 등 세계유수의 언론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기자이다. 그들은 일년 이상 걸려 불소화와 원자탄 개발 프로그램과의 관련을 조사하여 이 글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수돗물불소화의 문제-녹색평론 특별자료집>, 1998, 녹색평론사


  미국이 아이들의 충치를 줄이기 위해 공공의 수돗물에 불소를 넣기 시작한 지 약 50년이 지난 지금, 기밀취급이 해제된 정부문서들은 아직도 물의를 빚고 있는 이 공중보건상의 조치의 근원에 새로운 조명을 비쳐주고 있다. 그것은 불소와 핵시대의 여명 사이에 놀라운 관계가 있었음을 폭로하고 있다.

  '안전하다'고 불소를 장려해온 조치의 배후에 숨겨진 정부의 동기는 일반대중에게도, 민간연구자들, 보건전문가들 또는 언론인들에게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공중보건 지도자들은 소량의 불소는 사람에게 안전하며 아이들의 치아에 좋다고 주장해왔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의 공공 수돗물 3분의 2가 불소처리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그 안전성 판단은 필자들이 입수한 수백개의 2차대전 관련 기밀문서들 ― 원자탄을 만든 군사그룹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문서들을 포함하는 ― 에 비추어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문서들을 보면 불소가 원자탄 생산에 하나의 핵심적인 화학물질이었음이 드러난다. 냉전기간 동안 핵무기를 위해 폭탄급의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제조하는 데 수백만톤의 불소가 필요했다. 알려진 화학물질 중 가장 유독한 것 가운데 하나인 불소는 미국 원자탄 프로그램에 있어서 가장 건강에 위험한 ― 근로자들에게나 인근 지역공동체에 ― 화학물질로 급속히 부상하였다.

  최근에 기밀취급이 해제된 이 문서들을 검토한 의료전문가들은 냉전시대의 보안에 대한 고려로 말미암아 불소가 공중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객관적 .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저지되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듀퐁과 딥워터 참사
  이 문서의 실마리는 2차대전의 절정기에서 시작되는데, 그때 극심한 오염사고가 뉴저지의 딥워터에 있는 듀퐁 화학공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일어났다. 그 공장은 당시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해 수백만 파운드의 불소를 비밀리에 생산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온 글로스터와 세일렘 군(郡)의 농장들은 고품질 농산물로 유명했지만, 1943년 여름에 농부들은 "이 근처에서 뭔가가 복숭아를 태워버리고 있다"고 보고하기 시작했다. 듀퐁사의 화학약품 방출사고에 뒤이어, 가금류가 죽었고, 농산물을 먹은 농장일꾼들이 밤새도록 그리고 다음 날까지 토했다.

  "우리 말들이 병들어 보였고 너무 몸이 굳어 일할 수 없었던 것이 기억난다"라고 밀드레드 죠다노는 회상한다. 어떤 소들은 배로 기어다님으로써 겨우 풀을 뜯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다리를 쓰지 못했다.

  '맨해튼 프로젝트' 문서들에 의해서 주정부 관리들이 이 뉴저지의 사고 때문에 은밀하게 경고받았음이 드러난다. 1946년 3월 1일자로 되어있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한 비밀기록에서, 프로젝트의 불소 독물학 연구 책임자였던 해롤드 C. 호지는 그의 상관 스태포드 L. 워렌 대령에게 "뉴저지의 일부 지역의 대기의 불소오염에 관련된 문제들"에 관하여 우려를 표현하였다. "네개의 다른(관련되어 있지만)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고 호지는 말했다. "1) 1944년에 수확된 복숭아들이 입은 피해, 2) 이 지역에서 재배된 야채들에서 비상한 정도의 불소가 함량되었다는 보고, 3)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혈액속에 비정상적으로 높은 불소함량이 있었다는 보고, 4) 이 지역의 말들과 소들이 심각한 오염피해를 입었다는 보고"가 그것이었다.
 

  민사소송 ― 미국의 음모
  뉴저지의 농부들은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소피해에 대하여 듀퐁사와 '맨해튼 프로젝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보도에 의하면 이것은 원자탄 프로그램을 상대로 한 미국에서의 최초의 소송이었다.

  그동안의 기밀문서들을 보면, 이러한 소송이 정부에 큰 충격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레슬리 R. 그로브스 소장은 워싱턴에서 비밀회의를 소집했고, 미육군성, '맨해튼 프로젝트', 식품의약국, 농 . 법무성, 미군 화학전 담당부서, 에지우드 군수공장, 그리고 표준국의 수십명의 과학자들과 관리들과 듀퐁사의 변호사들에게 강제출석을 요구했다. 그 회의에 대한 기록들은 뉴저지 농부들을 이기기 위해 정부의 모든 힘이 비밀리에 동원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로브스 장군에게 복사해준 한 기록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쿠퍼 B. 로디즈 중령은 "뉴저지 … 의 복숭아 과수원 주인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정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될 증거를 얻기 위한 과학적 조사"를 맡도록 여러 기관들을 어떻게 소집해야 할지를 적어놓았다.
  1946년에 미국은 본격적인 원자탄 생산을 시작했다. 원자탄은 전후세계에 있어서 미국의 지도력을 보장해주는 데 결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불소에 관련된 소송은 그 전략에 심각한 장애물이었다.

  "만약 농부들이 이기면, 그것은 선례가 되어 원자탄 계획의 불소사용 능력을 저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라고 기밀해제된 불소관련 문서들을 검토한 테네시의 핵전문 공익변호사 재클린 키트렐은 말했다. 그녀는 덧붙인다. "인적 피해에 대한 보고들이 특별히 위협적이었던 것은 홍보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막대한 보상금 때문이었다."

  실제로, 1946년 '맨해튼 프로젝트'의 한 비밀메모에 따르면 특히 듀퐁사의 우려는 큰 것이었다. '높은 불소함량' 때문에 그 지역 농산물의 거래를 금지하려는 식품의약국(FDA)의 위협에 직면하여 듀퐁사는 변호사들을 워싱턴의 FDA 사무실에 급히 파견했고, 거기서 열띤 논쟁이 일어났다.

  다음 날 그로브스 장군에게 보내진 메모에 따르면, 듀퐁사의 변호사는 "식품의약국의 어떤 조치도 … 듀퐁사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며, 나쁜 홍보상황을 만들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존 데이비스 대위는 FDA의 식품 관계 책임자에게 접근하여 "식품의약국이 취할 조치의 결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갖는 실질적 이해관계를 강하게 인식시켰다."

  농산물 거래금지는 없었다. 그대신 뉴저지 지역의 불소에 대한 새로운 테스트가 행해지도록 되었다. 그리고 그 테스트는 "만일 … 소송이 시작되면 국방당국이 행한 작업이 가장 큰 증거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에" 농무성이 아니라 미군 화학전 담당부서가 맡도록 하였다. 이 메모에 그로브스 장군은 서명하였다.

  뉴저지 농부들의 소송은 결국 좌절되었다. 정부는 2차대전 동안 듀퐁사가 얼마나 많은 불소를 대기중에 방출했는지를 밝히면 "그것은 미합중국의 군사적 보안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이유로 발표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농부들은 200달러가 채 되지 않는 상징적 보상금을 받았다.

  기밀취급이 해제된 문서들에 따르면, 홍보문제에 대하여 더 폭넓은 해결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독물학자 해롤드 C. 호지였다. 보건담당 책임자 워렌 대령에게 쓴 편지에서 호지는 물었다. "〔불소〕독물학이나 또 어쩌면 치아건강에 있어서의 불소의 유용성에 관한 강연들을 통해서 세일렘과 글로스터 주민들의 불안을 없애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원자탄과 불소
  불소에 대한 인체의 노출은 2차대전 이후 크게 확산되었다. 그 영향은 문자 그대로 우리 아이들의 미소에서 볼 수 있다. 많은 수의 미국 청소년들이 ― 어떤 도시에서는 80퍼센트까지 ― 현재 치아불소증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 국립연구위원회에 따르면 그것은 과도한 불소노출이 있었다는 가시적인 첫 신호이다. (그 신호는 특히 앞니의 희끄무레한 얼룩이나 반점, 또는 더욱 심한 경우 거무스름한 반점이나 줄무늬이다.)

  "치아는 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창이다"라고 뉴욕의 세인트 로렌스 대학 화학교수 폴 코네트는 설명한다. 최근에 소아 뼈전문가들은 미국 청소년들에게서 응력(應力)골절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코네트와 그밖의 과학자들은 불소 ― 1930년대 이래 여러 연구에 의해서 뼈손상에 관계가 있다고 밝혀진 ― 가 한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원자탄계획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미국 최초의 수돗물불소화의 실험에 있어서 두드러진 ― 공표되지 않았지만 ― 역할을 했다. 그 실험은 뉴욕주 뉴버그에서 행해졌다.

  그것은 1943년의 뉴버그의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 일이 권장할 만한 것인가를 조사할 목적으로 뉴욕주 보건부에 한 특별위원회가 임명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위원회의 의장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호지 박사였다.

  그 외의 위원들 가운데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탄생시켰던 펜타곤 그룹의 주도적 멤버들이 있었다. 그들이 군사 관계자들이라는 사실은 비밀에 부쳐졌다. 호지는 약리학자로, 바네트는 소아과 의사로 되어있었다.

  그 위원회는 뉴버그의 불소화를 권했다. 대답해야 할 핵심문제는 치아 이외의 조직이나 기관에 이롭든 아니든 어떤 누적적 영향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문서에 따르면, 이것은 펜타곤의 주된 관심사였다. 국방성의 원자탄계획으로는 냉전기간 내내 노동자들과 지역공동체들이 계속해서 불소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45년 5월, 뉴버그의 수돗물은 불소처리되었고, 그후 10년에 걸쳐서 그곳 주민들은 뉴욕 보건부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그와 병행하여 '프로그램 F'가 비밀리에 연구를 수행했다. 그 연구의 초점은 뉴버그 시민들의 혈액과 조직속에 잔류하는 불소의 양이었다. 보건부 직원이 협력해서 혈액과 태반 샘플들을 로체스터 대학의 '프로그램 F' 팀에게 보냈다.

  '뉴버그 시범 계획'의 최종 보고서는 1956년 미국 치과학회지에 발표되었다. 그 결론은 소량의 불소 농축은 미국 시민들에게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생물학적 증거 ― "로체스터 대학 원자력 프로젝트에서 … 수행한 연구에 근거하는" ― 를 전달한 사람은 다름아닌 호지 박사였다.
 

  로체스터 대학
  소량의 불소가 안전하다는 증거는 대부분 전후 로체스터 대학이 행한 연구에 근거해 있다. 그 연구는 인체손상을 이유로 원자탄계획에 대하여 제기될지 모르는 소송을 예상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전후에 로체스터 대학 의학부의 교수진에는 헤롤드 호지와 '맨해튼 프로젝트'의 의료관계 최고 책임자였던 스태포드 워렌이 들어있었다.

  그로브스 장군에게 보내진 1945년 '맨해튼 프로젝트'의 한 비밀기록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뉴저지〕지역에서 동물들과 사람들이 불소화수소 가스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불평들 때문에 … 로체스터 대학이 불소의 독성영향을 측정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전쟁 동안 뉴욕주 북부에 있는 특권적인 그 대학에는 원자탄 제조에 사용되는 새로운 '특수물질' ― 우라늄, 플루토늄, 베릴늄 및 불소 ― 들이 어떤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는가를 연구하는 한 은밀한 부서 ― '맨해튼 프로젝트'의 하위부서 ― 가 있었다. 그 일은 '맨해튼 프로젝트'와 그 후속기관인 원자력위원회(AEC)로부터 흘러나오는 수백만달러로 전쟁 후에도 계속되었다.

  로체스터 대학의 불소연구 ― '프로그램 F'라는 암호명이 붙여진 ― 는 일급비밀 원자력 프로젝트(AEP) 시설에서 행해졌는데, 그것은 원자력위원회가 설립한 것으로 스트롱 메모리얼 병원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병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들이 방사성 플루토늄이 든 주사를 맞았던 곳이었다.

  '프로그램 F'는 아이들의 치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1948년의 기밀보고서에서 분명히 설명되었듯이 "몇년 전 과일 수확이 손상되었다는 주장에서 제기된 소송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같은 지역 주민들의 혈중 불소가 과도한 수준이라는 것이 보고된 이래 우리의 주된 노력은 혈중 불소가 어떠한 독성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알아보는 데 바쳐졌다."

  잠재적인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좀더 미량이라도 유해한 것으로 판명되었다면 원자탄계획과 그 계약자들은 소송대상이 되었을지 모른다.

  불행히도, 불소의 안전성에 대한 증거의 많은 부분은 로체스터 대학의 '프로그램 F' 과학자들이 수행한 연구에 의거해 있다. 전후에 그 대학은 치아가 썩는 것을 줄이는 데 있어서의 불소의 효과뿐 아니라 불소의 안전성을 확증하는 선도적인 학술센터로 부상했다. 이 연구의 핵심 인물이 해롤드 C. 호지였다.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프로그램 F'의 관심은 호지가 일찍이 적었듯이 "그 지역 주민측의 불소에 대한 두려움에 대응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원자탄 프로그램은 플루토늄의 인체에 대한 영향을 연구할 필요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소의 영향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공공의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 것은 이런 기회를 제공했다.
 

  뉴버그 파일
  오늘날, 원자탄 프로그램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미국의 첫 불소화실험을 비밀리에 구상하고 이끌었으며 시민들의 혈액과 조직 샘플을 연구했다는 뉴스는 믿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뉴버그의 현 시장 오드리 캐리는 우리의 발견에 대해서 말하였다. "그것은 알라바마 주에서 매독환자들에게 행해졌던 터스키지 실험을 생각나게 한다."

  1950년대 초에 어린아이였던 캐리 시장은 뉴버그의 오래된 소방서로 간 일이 있다. 그 건물에는 공중보건소가 있었고, 거기서 불소화계획에 참여하고 있던 의사들로부터 그녀의 치아를 조사받았다. 지금은 캐리의 손녀가 앞니에 흰색의 불소치아 흔적을 가지고 있다.

  뉴버그 실험의 책임자 데이빗 B. 애스트는 우리들에게 자기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자들이 관련되었다는 것을 몰랐다고 했다. "내가 알았다면, 왜 그랬는지 그리고 무엇이 관련되었는지 조사했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뉴버그에서 채취한 혈액과 태반 샘플이 로체스터 대학 원자탄계획 연구원들에게 보내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는가? "나는 몰랐다"라고 애스트는 대답했다.

  그는 1944년 1월 전쟁중에 열렸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불소에 관한 비밀회의에 참가한 것과 듀퐁사건의 인적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호지 박사와 뉴저지에 간 것 ― 비밀기록들이 말하는 대로 ― 을 기억하는가? 그는 우리들에게 그 일들에 관하여 자기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다고 말했다.
 

  뇌의 불소
  1944년 4월 29일의 '맨해튼 프로젝트' 메모는 다음과 같은 으스스한 경고를 담고 있다. "임상증거는 육불소화우라늄이 중추신경계에 상당히 뚜렷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  T(우라늄을 가리키는 암호)보다는 오히려 F(불소) 성분이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큰 것 같다."

  그 메모 ― '기밀'이라는 도장이 찍혀진 ― 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보건 책임자인 스태포드 워렌 대령 앞으로 보내진 것이었다. 워렌 대령은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 동물실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승인하도록 요청받았다.

  워렌 대령은 즉시 중추신경계 연구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2차대전이 한창일 때 불소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영향에 관한 연구가 승인되기 위해서는 연구계획안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설득력있는 것이 아니면 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계획안은 국립공문서보관소의 파일에서 분실되어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불소-중추신경계 연구에 대한 어떤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정보가 묻혀버렸다"고, 보스턴에 있는 포사이스 치의학센터(Forsyth Dental Center) 독물학 책임자로 있었으며 지금은 불소첨가 비판자인 필리스 멀리닉스 박사는 결론짓는다. 1990년대 초 멀리닉스 박사와 동료들에 의해 행해졌던 동물연구는 적은 양에도 불소가 사람의 뇌 기능에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중추신경계 독소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근 중국에서 얻은 역학(疫學)적 증거는 소량의 불소노출과 아이들의 저하된 IQ 사이에 상호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연구를 하는 동안 멀리닉스는 일찍이 미국에서 사람의 뇌에 대한 불소의 영향에 관해서 사실상 아무런 연구가 없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 그녀가 연구비를 신청하자 미국 국립보건원은 이를 거절했다. 그들은 "불소는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기록들을 살펴본 후, 멀리닉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했다. 그녀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실제로 불소와 중추신경계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했지만 그 결과는 묻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고 있다. 그것은 미국 정부에 법적인 문제와 대국민 홍보문제를 일으킬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추신경계 연구를 하기 위한 1944년의 계획안은 해롤드 C. 호지 박사에 의해 작성되었다. 거의 50년 후, 호지는 멀리닉스의 중추신경계 연구 고문으로 일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그가 행했던 중추신경계 연구에 대해서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불소의 은폐된 위험들
  뉴버그와 기타 원자탄 프로그램의 불소연구로부터 나온 건강에 해롭다는 발견들은 억압되었는가? 원자력위원회의 보조금을 받았던 모든 연구들은 민간의 의학이나 치과의 학회지에 발표되기 전에 기밀취급이 해제되어야 했다. 기밀이었던 원래의 기록들은 어디에 있는가?

  • 불소 물질대사'에 관한 2차대전중의 주요 비밀 과학회의들 중 하나의 기록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빠져있다. 그 회의 참석자들에는 해롤드 호지, 뉴버그 프로젝트의 데이빗 B. 애스트, '불소화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미국 공중보건원의 치과의사 H. 트렌들리 딘이 들어있다. 국립문서보관소 사서들은 "그것이 파일에서 빠져있다면 아마 여전히 기밀취급되고 있을 것이다"라고 우리들에게 말했다.
  • 물의 불소첨가에 관한 1944년 '맨해튼 프로젝트' 기밀보고서는 로체스터 대학 원자력 프로젝트의 파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그리고 녹스빌에 있는 테네시 대학의 핵박물관에서 빠져있다.
  • 숫자상으로 다음에 올 연속적인 네개의 문서들도 또한 빠져있다. "그 기록들도 여전히 기밀이거나, 아니면 정부가 '사라지게' 했다"고 테네시 녹스빌에 있는 미국 환경보건연구 프로젝트의 실무책임자 클리포드 호니커는 말한다.
  • '듀퐁소송'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1941년의 로체스터 원자탄 프로젝트 노트북에서 일곱 페이지가 찢겨져 나갔다. "매우 이상하다"고 의과대학 기록보관 책임자인 크리스 홀리언이 말했다.
  • '정보자유법(FOIA)'에 따라 기밀취급된 수백개의 불소 보고서들을 찾아달라고 미국 에너지부에 1년도 전에 요청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 우리들은 후에 미국 치과학회지 1948년 8월호에 발표되었던 불소 안전성 연구에 대한 원래의 기밀기록들을 최초로 발견한 것 같다. 발표된 것과 기밀문서를 비교해보면 원자력위원회가 불리한 정보를 실제로 삭제해버렸음을 알 수 있다. 그 삭제의 정도는 희비극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 그 연구는 원자탄계획을 위해 불소를 생산하고 있던 공장 노동자들의 치아와 신체의 건강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 발표된 것은 노동자들이 더 적은 충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을 뿐이다. 기밀문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서 치아가 남아있지 않다고 보고하고 있다.
  • 기밀문서는 불소가스가 신발속의 발톱을 분해시켜버리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고무장화를 신어야 했다고 한다. 발표된 것은 이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 기밀문서는 불소가 사람의 치아에도 유사하게 작용해서 그 노동자들의 이가 빠지는 것에 기여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발표된 것은 이 말을 생략하고 있다.

  국립치과연구소(불소연구를 지원하는 미국 기관) 소장 해롤드 슬라브킨 박사는 지난 50년간 충치방지에 있어서의 불소의 효력과 안전성은 잘 증명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의 연구동기는 종종 그 결과와 다르다. 나는 지식의 출처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기밀문서와 검열삭제되어 발표된 문서를 비교한 후, 필리스 멀리닉스는 "내가 과학자라는 사실이 부끄럽다"라고 논평했다.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사무국  office@no-fluori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