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소 ― 자유를 위한 투쟁   (연재 1회)

  한스 물렌버그

(연재 2회)

  선진국이라면 당연히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많은 한국인들에게 영어 사용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유럽 선진국들이 불소화 프로그램을 거부해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일부 치과계 인사와 보건관계 전문가들은 유럽국가들의 비불소화 시책에 대해 근거없는 여러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유럽국가들도 오랫동안 불소화를 수용하라는 미국의 보건당국과 자국내 치과 전문가들로부터의 압력에 시달려왔고, 그리하여 부분적으로 불소화를 시행하기도 하였으나 중도에 중단 내지 불법화하였다는 사실이다.

  부정확한 지식과 막연한 추리가 아니라 과연 서유럽 국가에서는 왜, 어떤 방식으로 불소화가 중단되었는가를 좀더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하여 네덜란드에서 불소화가 불법화되기까지의 전말이 기록된 책 〈불소 ― 자유를 위한 투쟁〉Fluoride : The Freedom Fight(1987)의 주요 부분을 발췌 번역연재할 예정이다. 이번호에 그 첫회분을 싣는 이 책의 저자 한스 물렌버그(Dr Hans Moolenburgh)는 네덜란드 사회에서 잘 알려진 개업의(開業醫)이다.

《불소화반대소식》2000년 2월 제4호

  프롤로그

실험동물이 된 사람들

  이 책의 의도는 (불소화 추진론자들이 주장하는) 불소화의 이점(利點)을 설명하거나 또는 불소화의 위험을 경고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소화의 그러한 측면들을 더 알고자 하는 사람은 그 주제로 출판된 많은 책들 중의 하나를 사서 보면 될 것이다.

  여기서 묘사하려는 것은 투쟁 그 자체이다. 수돗물불소화는 전 세계적인 투쟁을 야기했고, 20세기의 가장 격렬한 의학적 논쟁 중의 하나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 투쟁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려면 책 한 권이 아니라 백과사전이 필요할 것이다. 투쟁의 과정에는 엄청난 양의 논쟁, 임기응변적 행동, 부도덕성, 정신적 곡예, 그리고 사력을 다한 전면전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네덜란드의 경우만을 가지고도 여러 권의 책을 채울 수 있을 정도이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한 평범한 시민이 순간적으로 예측 불허의 커다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러한 시민이 온갖 역경 끝에 그 소용돌이로부터 빠져나오게 될 때, 그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보다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변화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나는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출발점에서부터 시작하자. 1952년 10월 1일에 네덜란드의 두 도시 티엘과 쿨렘보르그 시의 신문들에 동시에 놀라운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제목은 '공공의 치아건강을 위한 위대한 실험'이었다. 같은 해 연말에 두 도시 중 어느 한 도시에서는(어느 쪽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여 공급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나는 여기서 그 기사를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낙관적인 어조와 희망에 찬 기대에 대해 더 상세하게 말할 생각은 없지만, 한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두 도시의 시장들과 시의회가 이 중요한 실험에 동의하고 원칙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이 계획을 현실화하기 위한 첫 단계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티엘과 쿨렘보르그의 치과의사들과 의사들 또한 협력을 약속했고 장학관들도 관심을 표했다. 의학과 약리학 부서의 책임자들 역시 이 실험의 시행에 아무런 반대가 없었다."

  우리는 이 기사가 전체적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여러 해 동안의 격렬한 감정적인 싸움을 야기하게 될 논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 싸움은 마침내 네덜란드 보건부 장관이 울음을 터뜨리게 되는 희비극적인 상황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24년 뒤의 일이 될 것이었다.

  문제의 요점은 이렇다. 의료 당국자, 시의 행정관, 의사, 치과의사들로 구성된 소수의 전문그룹이 전체 시의 주민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의학실험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내가 주민들이라고 하는 것은 시의 주민들의 대표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의료 목적을 위하여 특수하게 조정된 물을 마셔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글은 일단 표면적으로 적어도 두 가지의 매우 놀라운 측면이 있다. 우선, 마시는 물과 같은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물질을 통해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실험을 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이 실험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모든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려는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런 기본권 중에 빠트릴 수 없는 것은 자기자신의 몸을 보살필 권리이다. 정부가 개인에게 그 사람의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또 선택의 여지도 주지 않고, 약물을 복용하도록 한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 개인은 민주주의가 아닌 전체주의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소수의 비선출 그룹이 전체 주민의 삶을 절대적 권한을 갖고 지배한다. 그런 권한은 일상생활의 모든 사소한 일에까지 침투하는 힘으로, 심지어 아이들의 교육문제, 종교, 가족계획(중국을 보라!) 그리고 자기자신의 몸을 어떻게 보살필 것인가 하는 것과 같이 극히 개인적인 일들에까지 관여한다.

  두번째로, 티엘과 쿨렘보르그의 주민들이 이 신문의 기사를 단지 또하나의 공고 정도로 받아들였다는 점도 매우 놀라운 일이다. 사람들이 길거리에 모이지도 않았다. 항의도, 아무것도 없었다. 당국은 주민들을 그 먹이를 좀 바꿔주어야 하는 젖소 정도로 취급했고, 그 젖소들은 이런 대우를 극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주민들은 소수의 엘리트들에게 일의 진행을 허락한 셈이다.
 

  불소화 ― 민주주의의 붕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쩌면 시의 주민들은 완전히 새로운 현상에 맞닥뜨려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형태의 독감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바이러스의 피해자가 되고 마는데, 이는 신체가 그 병균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반응 현상은 사람들에게 히로시마의 핵폭탄과 같은 엄청난 재앙이 닥쳤을 때도 나타난다. 히로시마의 생존자들은 마치 로봇과 같았다. 그들은 그 경험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 경험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같은 무반응 현상을 히틀러의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에게서도 되풀이하여 목격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억누르고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 경험이 보통의 일상생활의 용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피해자들이 마치 오랜 침묵 끝의 화산 폭발처럼 자신들의 경험을 쏟아내는 데에는 대개 25-30년은 걸렸다.

  주민들에게서 별 반응이 없었던 것은 그들이 직면한 상황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실험을 추진하던 당국이나 과학자들은 그럼 어떻게 된 것인가? 그들 중 단 한명도 "이 일을 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인가?" 하고 자문한 사람이 없었단 말인가? 그들 모두가 어떤 일들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바로 이 부분에서 엘리트들은 그들의 행위의 중대성을 깨닫게 해주는 '기관(器官)'을 아예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기계적 동물"이미지
  낙태수술, 장기이식, 수돗물불소화 당연시
  나는 소수의 능동적 집단과 다수의 수동적 집단의 두 집단으로 사람들을 나누었지만 이런 구분은 실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의식에서 무언가 빠진 것이 있는지 모른다. 즉, 수돗물의 불소화를 통해 민주주의라는 약한 건물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이 그 밑에서부터 무너졌고, 이 불소화로 말미암아 구시대의 정부 형태 ― 전지전능의 제왕, 엄격하고도 자비로운 통치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 로의 복귀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배층인 기술관료들에게는 고대의 신격화된 왕들이 가지고 있었던 능력이나 지혜가 모두 없었다. 그들은 그저 실수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인가?

  바로 여기서 우리는 20세기의 근원적인 불행에 마주치게 된다. 19세기에 새로운 가치가 인류에게 소개되었다. 인간을 다른 대상들 중의 하나이자 다른 물질들 중 하나로, 아직은 미처 다 알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모두 이해할 수 있을 측정이 가능한 기계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신의 아들에서부터 동물들의 한 종류로, 그리고 나중에는 파블로프에 의해서 기계장치로 격하되었다.

  인간을 짐승의 위치로 끌어내린 다윈이나, 다시 그 짐승을 반응기계로 떨어뜨린 파블로프를 직접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인간은 기계적인 동물이다'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유치원에서 이 사상을 소개받고, 학교와 공상과학 소설, 만화책을 통해 교육받는 것이다. 고등교육에서는 이 이미지를, 어지럽고 눈을 멀게 하는 그림으로 완성하여 우리 사회의 미래의 지도자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정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인간은 기계적 동물이라는 사고가 더 깊이 인식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을 기계로 본다면, 그리고 그 기계에 결함 ― 충치와 같은 ― 이 생겼다면, 기계에 기름칠을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수돗물불소화는 인류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의 직접적이고 논리적인 귀결이다. 기계적 인간은 사용 후 버려도 되는 도구들과 마찬가지가 되었기 때문에 광범위한 낙태수술이 매우 논리적인 결론이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단순한 기계이기 때문에 그 일부를 교체하는 것은 물론이고(심장 이식수술), 더이상 생산에 필요치 않다면 아예 내다 버려도 괜찮은 존재가 된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수돗물불소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큰 물결에 휩쓸려 있으면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잠시라도 가만히 있거나 그 물결을 거스르려고 해보라. 철학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현실을 그저 표면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조차 현대의 야만성과 위험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불소화 반대 운동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특하고, 각성의 계기가 되는 경험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1952년 당시에 우리는 아직 거기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때에 작고 보잘것없는 씨앗이 무분별한 사람들의 손으로 뿌려졌다. 바로 티엘과 쿨렘보르그에서의 실험이었다. 사람들은 건강한 치아를 원했다. 그러나 정작 뿌려진 것은 용의 이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