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

 

  불소 ― 자유를 위한 투쟁   (연재 2회)

  한스 물렌버그

 

(연재 1회)

 

 

 

 

 

 

 

 

 

 

  선진국이라면 당연히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많은 한국인들에게 영어 사용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유럽 선진국들이 불소화 프로그램을 거부해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일부 치과계 인사와 보건관계 전문가들은 유럽국가들의 비불소화 시책에 대해 근거없는 여러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유럽국가들도 오랫동안 불소화를 수용하라는 미국의 보건당국과 자국내 치과 전문가들로부터의 압력에 시달려왔고, 그리하여 부분적으로 불소화를 시행하기도 하였으나 중도에 중단 내지 불법화하였다는 사실이다.

  부정확한 지식과 막연한 추리가 아니라 과연 서유럽 국가에서는 왜, 어떤 방식으로 불소화가 중단되었는가를 좀더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하여 네덜란드에서 불소화가 불법화되기까지의 전말이 기록된 책 〈불소 ― 자유를 위한 투쟁〉Fluoride : The Freedom Fight(1987)의 주요 부분을 발췌 번역연재할 예정이다. 이번호에 그 첫회분을 싣는 이 책의 저자 한스 물렌버그(Dr Hans Moolenburgh)는 네덜란드 사회에서 잘 알려진 개업의(開業醫)이다.

《불소화반대소식》2000년 3월 제5호


소용돌이에 말려들다   

  한 일간신문 기사
  1968년 10월 26일, 되돌아보면 큰 의미를 갖는 것이었지만, 그때는 사소한 일로 여겨지던 일이 내게 일어났다. 어느 토요일 오후였고, 나는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짧은 기사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1970년 중반부터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수돗물에 불소가 첨가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천년이 넘은 이 성당도시 할렘은 유서깊은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 도시는 1572년에 스페인 점령에 저항하여 봉기한 최초의 도시 중의 하나였다. 내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 아직도 '스페인 사람들의 진지'라고 불리는 거리가 있는데, 거기서 스페인 사람들의 총이 도시를 겨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초에는 우리는 프랑스의 점령을 겪어야 했고, 1940년에는 나치의 발 아래에 깔렸었다. 우리집에서 자전거로 3분 거리에 도전적인 모습으로 두 손을 벌리고 있는 한 남자의 동상이 서있다. 그것은 1945년 3월 7일 15명의 젊은이들이 독일군에 의해 총살된 것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행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한 독일인 장교가 권총을 꺼내 젊은이들의 머리를 겨누어 사살했던 것이다.

  점령은 추한 상처를 남기고 끝났지만, 도시는 의연히 서있다. 아마도 그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그 도시의 주민으로서 나는 독재적인 시책에 대하여 저항을 느꼈는지 모른다.

  1968년 당시 나는 불소화란 말은 들어보았지만, 거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 문제에 관해 내게 무언가 얘기해준 사람은 늙은 롤프였다. 롤프는 80대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눈을 가진 사냥꾼 같은 모습이었다. 전쟁 전에 그는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 코끼리와 호랑이를 사냥하였고, 그 경험에 관한 흥미로운 책을 아이들을 위해 여러권 썼다. 전쟁 동안에는 그는 사냥 대상을 맹수에서 독일인들로 바꾸었다. 그리고 전후에 그는 수돗물불소화 싸움에 뛰어든 최초의 사람 가운데 한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미 그에게서 불소화에 관해 들어본 것이 있었던만큼 그 토요일의 신문기사는 나의 분노를 샀다. 그것은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의 빌미가 되기에 마땅한 주제로 보였다. 나는 짧은 편지를 신문사에 보냈다.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억눌린 심정을 무해한 방식으로 해소시키고, 그럼으로써 감정의 정화를 느끼는 중요한 정신위생상의 제도이다.

  그런데, 내가 보낸 글이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란이 아니라 독립된 제목을 가진 한편의 기사로 10월 29일자 신문에 나타났을 때 나의 놀라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그 내용을 전부 인용할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서도 중요하게 생각되는 구절 하나를 인용해보자.

  만약 불소가 비소만큼 유독한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불소화 이후 5년 뒤 할렘에서의 암 발생률에 관한 통계를 꼭 보고 싶다. 나로서는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비소와 불소를 동등하게 취급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러나 암 발생률에 관한 나의 예측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완전히 맞아떨어졌다. 7년 뒤 존 야무야니스와 딘 버크는 비불소화 지역과 불소화 지역을 비교하였을 때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내가 신문에 보낸 글은 과학적인 것이라기보다 순전히 영감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나는 다음과 같이 글을 마무리지었다.

  내가 수도꼭지를 틀 때 내가 거기에 나타나기를 원하는 것은 물이지, 내가 요청하지도 않은 의약품이 아니다. 이것이 허용된다면, 머지않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모두는 약을 마시게 될 것이다.

  이 글로써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불안한 느낌을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때맞추어 불을 지폈고, 그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신문에는 독자들로부터의 편지가 홍수를 이루었다. 댐이 무너지듯 끊임없는 편지의 물길이 그해 크리스마스까지 계속되었다.
  초기 단계에서 이미 두개의 주된 경향이 분명히 감지될 수 있었다. 첫째, 사람들은 먹는물 불소첨가로 인한 장기적 영향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둘째,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자유에 대한 침해를 느끼고 있었다. 한사람의 의사로서 나는 첫째 문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그 입장이 틀렸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소용돌이의 진짜 중심에 있는 것은 둘째 문제였던 것이다.
 

  개들이 짖기 시작하다!
  1968년 11월 14일 나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친애하는 동료에게,
  '할렘 대그블라드' 10월 29일자에 발표된 당신의 기사를 읽고 내 사무실에서 당신과 토론을 갖고자 합니다.
  C. 메츠
  북부 홀랜드 지역 보건책임관
 

  나는 이 편지를 받고 마음이 아주 편했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열살짜리 소년이 규정된 대로 등불을 밝히지 않은 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제복을 입은 경찰관에게 제지를 당한 기분이었다. "이봐 젊은이, 자전거에서 내려 얘기 좀 해보세."

  나는 먼저 '할렘 대그블라드'의 책임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소화 싸움 동안에 우리는 순전한 행운을 얻는 기회가 많았다. 신문의 편집자 조스는 균형잡힌 견해를 가진 사람이었고, 모든 형태의 극단주의를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받은 편지를 읽어주자 그는 말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굴복시키려는 겁니다."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또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 동료로서 루디라는 이름을 가진 일반의였다. 루디는 북극곰처럼 생긴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매우 훌륭한 의사였다.

  루디는 신문에 내 글이 발표된 뒤 맨 처음 내게 전화한 사람이었다. "기막힌 기사를 썼더군. 축하해. 자네가 불소화에 관해 아는 게 그렇게 많다는 걸 미처 몰랐어."

  나는 불소화에 관해 거의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디는 잠깐 동안 나를 심하게 나무라더니, 자기에게 많은 자료가 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루디의 자료를 열심히 읽었다.

  한편, 나는 보건책임자 메츠를 조금 놀려주기로 하고, 그의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 내가 동료 두사람과 함께 그의 사무실로 가서 그가 원하는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20세기의 가장 큰 의료추문의 하나에 대해서 계몽을 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메츠는 굉장히 화가 나서 내가 반드시 혼자 와야 하며, 어느 누구도 동반해서는 안된다는 답을 보내왔다. 그래서 나는 15년 전에 할렘에서의 개업허가를 받았던 그 방에 다시 가서 섰다.

  책상 뒤에 앉아있는 사람은 내게 생소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수상쩍게 바라보고, 자기 앞에 놓여있는 신문기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당신에게 경고를 드려야하겠습니다. 이런 글은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것은 집필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안하게 하자는 것이 저의 의도였는데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당신은 의사입니다.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글을 의사로서 쓴 게 아니라 할렘의 자유시민의 자격으로 썼습니다."

  그는 잠시 혼란스러워진 듯하더니, 완강하게 대꾸했다. "그렇지만 그런 글을 쓰는 것을 우리는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요?" 나는 분노를 느꼈다. "누가 명령을 내린 겁니까? 헤이그의 정부 관리들인가요?"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낮은 소리로 "그래요"처럼 들리는 말을 뱉은 것 같다. 그러나 그 기억은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수돗물 불소첨가보다는 불소정제가 아마도 좀더 나은 생각일지도 모른다고 그가 조심스럽게 말할 때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사죄의 빛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떻든 비교적 우호적인 기분속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 대화는 장차 내가 취할 태도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네덜란드 국가에 무엇인가 썩은 것이 있고, 누군가가 나를 위협하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용감한 사람이 아니지만, 아무리 평화주의적인 사람일지라도 그런 식으로 도전을 받으면 자신의 내부에서 혈거인의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날 불소문제를 둘러싼 한사람의 싸움꾼이 내 속에서 태어났다.
 

  최초의 싸움
  온갖 소동 끝에 불소화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가 시의회에서 다시 제기되었다. 얼마 전에 바로 이 의회가 공식적으로 헤이그의 중앙정부에 불소화를 허락해달라는 요청을 했을 때 시의회 의원들 다수가 이 시책에 찬성하였다. 그런데, 이제 시의회 의원 중 한명이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자 이번에는 다수가 이 시책에 반대하였다.

  그러자 치과의사들이 이 뜻밖의 패배에 격노하여 신문에 이렇게 썼다. "어떤 도덕적 또는 윤리적 이유로 불소화된 물을 마시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수도꼭지에 필터를 달아 여과해 마시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국장으로부터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는 치과의사들이 제안하는 여과기는 '비위생적인 시한폭탄'이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할렘에서 불소화는 당분간 시행되지 않게 되었다.
 

  오리엔테이션
  한편, 사람들은 나를 불소화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권위있는 전문가처럼 여겼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 일찍 울음소리를 낸 수탉이었을 뿐이다. 상황은 매우 불안정했다.

  다행스럽게도 루디는 독일어로 된 많은 문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문헌은 불소화 반대의 과학적 근거가 견고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실제로 슈바이가트 교수의 리더십 밑에서 불소화에 대하여 격렬하게 반대하는 '국제 영양물질 및 문명병 학회'라는 단체가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네덜란드에는 '수도꼭지 감시단'이라는 재단이 있었고, 그 단체가 세계 전역에서 나온 굉장히 중요한 자료들을 배포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레르기 질환 전문가로서, 실제로 불소화된 물의 부작용을 기록해온 미국인 의사 월드보트의 이름을 들었다.

  나는 불소화 시책에 대하여 세계 전역에 걸쳐 저항이 있고, 그 저항은 결코 조용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문헌을 생산해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수도꼭지 감시' 재단의 사무국장 휴벨링 여사가 이러한 문헌을 한 꾸러미나 내게 보내주었고, 나는 그것을 열심히 읽었다. 나는 몇년 내에 반불소화 전선의 큰 인물들 ― 월드보트, 버크, 야무야니스, 버그스탤러, 쿠크, 풀턴, 탬 그밖의 많은 사람들 ― 을 내가 직접 만나 악수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전국적 차원이나 세계적 차원에서 싸운다는 것은 내 능력을 크게 벗어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 일은 '수도꼭지' 재단의 의장 소르그드래거 교수 같은 거인들의 몫이었다. 나는 약간의 새로운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 자신의 역할은 할렘에서의 불소화 반대운동에 의학적 조언을 하는 것으로 한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지평선 위의 작은 구름은 커져가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도시가 하나씩 하나씩 불소화되어 가고 있었다. 1968년 6월에 이르러 네덜란드 사람 2,272,950명이 불소화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사무국  office@no-fluori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