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

 

 인권과 민주주의, 지방분권의 측면에서 바라본 수돗물 불소화

  하승수

 

 하승수 ― 변호사
<프레시안> 2005/10/26


 

 

 

 

 

 

 

 

 

1. 수돗물 불소화와 민주주의, 인권

수돗물 불소화 문제를 바라보면서,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수돗물불소화만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주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똑같이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반된 주장들이 펼쳐진다.

불소의 유해성이나 보건정책으로서의 적절성(불소화의 충치예방효과 등)에 대해서는 과학적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필자도 과학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유해성의 문제가 나오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과학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불소화의 문제를 과학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경계한다(현재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과 관련해서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주장을 ‘과학’에 근거해서 펴는 분들이 있지만, 많은 환경단체들은 그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먹는물에 특정한 물질을 투입하는 문제에 있어서, 현재의 과학 수준과 현재의 전문가집단 사이에서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종국적으로 안전하고 부작용이 없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정책, 보건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떠나서 바라볼 수는 없다고 본다.


문제는 수돗물불소화를 둘러싼 논쟁의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다. 불소화에 찬성하는 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돗물 불소화 사업이 공중보건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정책의 결정과정은 투명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과학기술정책이나 보건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전문가의 의견이 일반시민의 의견보다도 우월한 가치를 가지는가?(또는 전문가의 판단이 시민의 판단을 대체할 수 있는가?) 보건정책이라고 해서 소위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이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봉쇄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과학기술정책이나 보건정책에도 민주주의의 일반원리(지방자치 영역에서는 시민자치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과학기술정책이나 보건정책이라고 해서 시민들이 비(非)전문가라는 이유로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수돗물 불소화에 관련된 논쟁을 보면 그러한 의문이 든다. 공중보건정책이기 때문에 마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 것같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물이기 때문에 수돗물 불소화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이야기하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는 과정을 보면, 그 속에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분권과 상충되는 문제, 관료적 접근방식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부분들도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심각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인권의 측면에서 보아도, 수돗물불소화는 논란의 대상이다. 수돗물에 일률적으로 불소를 투입하는 것은 개인의 '자기건강관리권' 내지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기건강관리권은 헌법 제10조 제1항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 헌법 제17조에서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누구나 자기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라고 판단하기도 했다(헌재 1990. 9. 10. 89헌마82 등).

또한 공공재인 수돗물에 사람에게 효과를 미치기 위한 목적으로 불소를 투입하는 것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공공재인 수돗물을 이용할 권리와 선택권을 제한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률적으로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게 되면, 수돗물을 마시고 싶어도 불소가 싫어서 수돗물을 마실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참고로 필자는 수돗물을 음용하고 있고,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사는 지역에서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고 있을 때에는 필자가 수돗물을 마실 수 없었지만, 불소투입이 중단된 지금은 수돗물을 음용하고 있다).


그런데 수돗물 불소화에 찬성하는 분들은 장애인이나 빈곤층아동을 위해 수돗불 불소화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면 수돗물 불소화가 장애인이나 빈곤층 아동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 지가 문제로 된다. 또한 수돗물 불소화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장애인이나 빈곤층 아동의 복지,인권을 추구할 수 없는 지도 문제가 된다. 우리 헌법에는 과잉금지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2. 인권의 측면에서 바라본 수돗물 불소화의 문제점


(1) 엇갈리는 입장

불소화를 추진하는 사람들도,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모두 인권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불소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시민의 건강권과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서는 불소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불소의 혜택을 보기에는 경제적, 신체적 능력이 부족하므로, 아예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여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이들의 건강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 불소화가 이런 어린이들을 모두 충치에서 해방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60% 정도의 충치는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 불소화의 혜택과 상대적으로 무관한 사람들은 충분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적어도 도시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입니다. 불소화를 반대하는 사람들, 불소화가 싫으니 하지 말라는 사람들은 논쟁의 구도에서는 소수일지는 몰라도, 정말 이들이 느끼는 심리적 거부감이 충치로 고통받는 사람들보다 더욱 사회적 약자라 말할 수 있을까요? (박한종《수돗물불소화 사업의 이해》참고자료)

― 우리사회는 안타깝게도 사회안전망이 거의 전무하다. 특히 보건의료부문에서는 더욱 취약하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인 서민대중, 근로자, 농민, 여성, 어린이들이 고통을 더 많이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요 전염병은 예방접종 등을 통해 국가차원에서 관리하고 있고 개혁 차원에서 의료보험 통합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구강보건분야는 국가차원에서 방치되어 있으며 개인에게 책임이 떠넘겨지다시피 했다. 아플 때 경제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의료를 이용할 수 있는 여유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업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먹고사는 것이 해결된 사람들,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더욱 고통을 떠안고 있는 근로자, 서민, 농민, 여성, 어린이들에게 수돗물불화사업은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기농산물이 좋은 줄 알면서도 비싸서 사먹지 못하는 것처럼 개인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데 여러가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가차원의 보건예방사업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수돗물을 마시기 싫은 사람들은 수돗물을 마시지 말고 생수를 마시면 된다. 불소 수돗물을 마실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개인적 선택의 문제이며, 지역사회가 불소화사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공공복지의 문제이다. 정부는 공공복지에 있어서까지 이러한 개인적 취향을 우선해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경우 대중의 복지와 안녕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아래와 같은 비판을 펴고 있다.

― 아무리 가난하다 하더라도 불소치약으로 양치질을 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들은 드물다.

― 가난한 가정들이 불소 수돗물을 마시기보다는 치과진료의 혜택을 보다 쉽고 저렴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올바르다.

― 백보를 양보해서 불소가 충치예방에 정말 효과가 있다면, 또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다면 차라리 치약처럼 불소화된 생수를 시판하여 국민들이 선택적으로 마실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맑은 물을 마실 국민의 권리와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충치를 예방할 수 있는 훨씬 효과적인 정책일 것이다. … 만일 불소가 충치예방에 효과가 있다면 치과의사들의 책임하에 구강내에서 치아에만 국소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최상일《멈추시오 수돗물불소화》도서출판 직지, 2002년, 53면)

― 시민 개개인은 자신의 몸을 돌보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 시민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수돗물불소화를 할 수 있다는 논리는 개인의 몸과 마음에 대한 주권을 국가가 갖는다는 것이고, 언제든지 간섭할 수 있다는 잘못된 논리이다. (최상일, 앞의 책 103면)


(2) 찬성론의 문제점

  수돗물불소화 찬성론의 논리에서는 몇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 관련:불소투입량이 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적절히 조절되지 않으면 오히려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불소화로 인해 과량의 불소에 노출될 수 있다" "고령자, 당뇨병환자, 신장기능 장애자 등 병자는 불소의 독성에 취약하다" "영양상태가 빈약한 사람들은 불소의 독성에 취약하다"는 주장이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라면, 수돗물불소화는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권 실현에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

◆ 한편 찬성론자들의 주장처럼 불소화가 충치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충치는 발생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발생한 충치에 대해서는 수돗물불소화가 아무런 대책이 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고액의 치과진료비를 부담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은 치과진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치과진료에 대한 사회적 약자들의 접근권을 보장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 사회적 약자의 선택권 관련: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빈곤층이나 장애인이 경제적, 신체적 어려움 때문에 수돗물을 먹을 수밖에 없고, 그 점 때문에 수돗물불소화가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 찬성론의 논리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장애인이나 빈곤층에게도 중산층과 마찬가지로 '자기건강관리권'과 '선택권'은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빈곤층이나 장애인들 중에서도 불소가 투입된 수돗물을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경제적, 신체적 장애 때문에 먹고 싶지 않은 '불소 수돗물'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만약 경제적, 신체적으로 능력이 있다면 생수를 사먹든지 하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나, 사회적 약자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인권은 그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찬성론의 논리 속에는 "사회적 약자에게도 선택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고, 오히려 "우리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해서 그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라는 막연한 시혜적 생각이 깔려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문제에 접근할 때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논리가 바로 '시혜적 논리'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혜적 접근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인권은 우리가 제한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면 우리가 그들의 문제를 결정해주어야 한다"는 논리에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보장되려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 불소화에 대해 알지 못함으로 인한 자기건강관리권의 침해:불소가 투입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불소가 든 수돗물을 먹지 않을 선택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불소가 투입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개인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돗물을 먹게 되므로 스스로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권리가 침해되게 되며, 선택권은 행사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불소가 투입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비율은 상당하다. 수돗물불소화를 20여년간 시행해온 청주에서는 시민의 55%가 수돗물불소화 사업에 대해 모른다고 응답했다고 한다(한국청년연합회 청주지부 설문조사 결과).

◆ 과잉금지의 원칙:기본권 침해의 기본원칙 중에서 과잉금지의 원칙(비례의 원칙)이 있다. 이는 어떤 입법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수단으로서는 가장 국민의 기본권을 적게 침해하는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런데 불소가 충치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불소를 섭취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즉 개인의 자기건강관리권이나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법이 가능한 것이다. 불소를 수돗물에 투입하지 않고 불소를 섭취할 수 있는 다른 대체가능한 수단(불소정제, 양치, 불소치약 등)이 존재하는데도,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에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충치를 예방하기 위하여 어떤 수단(불소정제, 치약 혹은 불소양치 등)을 택할 것인가는 개인의 '자기건강관리권' 보장 차원에서 각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한 문제이다. 그리고 공중보건을 위해 개인의 자기건강관리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본권 제한의 기본원칙인 과잉금지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만약 사회적 약자가 충치예방을 위해 불소가 든 식수를 음용하고자 한다면, 불소가 든 생수를 공급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 즉 불소가 유해하지 않고 충치예방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돗물불소화 이외에 원하는 사람들에게 불소를 제공할 수 있는 다른 대체가능한 수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3.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본 수돗물 불소화의 문제점

현행 구강보건법상으로는 수돗물불소화의 시행여부를 결정하기 이전에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돗물불소화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현행 구강보건법 제14조 제2항은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한국수자원공사사장은 공청회 또는 여론조사 등을 통하여 관계 지역주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돗물농도조정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구강보건법 조항

개정을 추진중인 구강보건법 조항

제10조(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의 계획 및 시행)

①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시행하고자 하는 시ㆍ도지사, 시장ㆍ군수ㆍ구청장 또는 한국수자원공사사장은 다음 각호의 사항이 포함된 사업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1.~5. (생략)

②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공청회 또는 여론자사 등을 통하여 관계 지역주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

③,④  (생략)

제10조(수돗불불소농도조정사업의 계획 및 시행)

①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된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시행하여야 한다.

다만,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실시한 지역주민 여론조사 결과가 과반수 이상의 반대의견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 5. (현행과 같음)

②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광역상수도를 관할하는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에게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요청한 경우 한국수자원공사사장은 이를 실시하여야 한다.

③, ④  (현행과 같음)


  그런데 최근 장향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구강보건법 개정안에서는,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일단 시행하여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방법으로 실시한 지역주민 여론조사 결과가 과반수 이상 반대의견으로 나오면 시행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장향숙 의원의 구강보건법 개정(안)은 명백하게 지방분권의 원칙과 자치의 원칙, 그리고 민주주의의 보편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우선 수도법에 의하면 시민들에게 양질의 물을 공급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다. 수돗물 공급에 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자율적인 결정권을 주지 않고 무조건 시행하는 것이 원칙인 것처럼 규정하는 것은 노무현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분권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수돗물불소화 사업을 하였을 때에 그로 인한 예산상의 부담, 시민안전에 대한 책임은 지방자치단체가 져야 한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장향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구강보건법 개정(안)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에 이러한 판단의 권한을 전혀 부여하지 않고 있다. 무조건 시행하되,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방법으로 실시한 지역여론 조사결과가 과반수 이상 반대가 나오면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다. 이 조항속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의견수렴이나 여론조사도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영역이다. 지방자치를 하는 이상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어떤 방법으로 의견수렴을 하고 여론조사를 할 것인지는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방법”으로 여론조사를 하라고 법에서 규정한다는 것은 초유의 발상이다.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전에 수돗물불소화 사업과 관련하여 매우 불공정한 여론조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방적으로 수돗물 불소화 사업의 장점을 선전하는 내용의 설명을 한 후에 수돗물 불소화사업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고 질문을 하면 당연히 찬성한다는 답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구강보건법 개정(안)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방법”으로 여론조사를 하라는 것은 그런 점에서 도저히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여론조사에서 과반수가 반대하지 않으면 무조건 실시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수돗물에 불소를 인위적으로 투입하는 문제는 설사 과반수가 찬성하더라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고 과반수가 찬성하더라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굳이 예산을 들여서 사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단순 다수결이 아니며 토론과 심도있는 논의, 합의의 형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과반수 반대가 없으면 무조건 한다라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하물며 유해성논란이 있는 물질을 수돗물에 넣는 문제라면 단순 과반수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과반수가 반대하지 않으면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은 여론조사의 기본도 무시한 것이다. 여론조사를 하면 찬성, 반대 이외에도 “모르겠다”는 응답이 상당히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찬성 30% 모르겠다 30% 반대 40%가 나왔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구강보건법 개정안에 따르면 무조건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해야 한다. 반대가 찬성보다 많지만 과반수에는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구강보건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사람이나 단체라면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주민투표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비판할 자격이 없다. 주민투표는 그나마 구강보건법 개정(안)에서 제시한 여론조사 방법보다는 더 나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시민단체들이 이러한 주민투표에 대해 반대하고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민투표 이전에 주민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일방적인 홍보가 행해지고 관권이 동원되었다는 것이 반대이유이다. 지금 군산, 경주, 포항, 영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쓰고 공무원들이 동원되어 방폐장에 대해 일방적 홍보를 했다. 합리적 토론이나 반대측 의견의 충분한 전달은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시민단체들이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건복지부장관이 일방적으로 방법을 정해서 실시할 여론조사는 아마 현재의 방폐장 주민투표보다도 더 비민주적일 수밖에 없다. 정책에 대해 일방적 홍보를 한 이후에 실시하는 여론조사는 주민투표보다도 더 민의를 왜곡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재 추진중인 방폐장 주민투표의 문제에 공감하며, 지금처럼 추진되는 주민투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반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구강보건법 개정(안)에는 더더욱 반대한다. 민주적 의견수렴을 가장하지만, 관권과 일방적 홍보를 통해 주민들의 의사를 왜곡하여 자신들의 주장만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수돗물불소화는 중앙집권적인 성향을 가지고 추진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적극 개입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의 지원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심지어 보건복지부가 지역에서 실시할 설문조사 문항까지 내려보냈던 상황이니, 현재 수돗물불소화 사업은 위로부터 추진되는 중앙집권적 사업방식을 전형적으로 취하고 있다 하겠다. 이는 분권과 자치의 흐름에 반하는 것이며, 지방의 자율권을 무시하는 것이다.

수돗물불소화가 정말 필요하다는 소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앙집권적 법률에 기대려 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주민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고 반대하는 측의 이야기도 충분히 전달되게 하는 토론의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중앙집권적 법률에 기대려 한다면 분권과 자치의 원칙을 무시한 독재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수돗물 불소화사업에 찬성하는 목소리, 반대하는 목소리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에 관한 충분한 정보가 시민들에게 제공되고 토론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최종적인 결정도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지역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참여'와 '자치'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