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와 불소화

  김성균

 

 김성균 ― 행정학 박사, (사)경기지역사회경제연구소 연구실장
《불소화반대소식》2002년 4월 제10호


 

 

 

 

 

 

 

 

 

  수돗물불소화는 국민의 구강보건이라는 공공의 목적으로 시행되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수돗물불소화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불소화로 인해 체내에 축적된 불소가 치아불소증, 골불소증, 면역기능 저하 등을 일으키는 등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수돗물불소화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본 필자는, 법적·행정적 측면 및 기술중심주의 정책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 몇가지 사항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법적·행정적 문제점

  첫째, 수돗물불소화 문제는 보건당국 혹은 치과계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관련 부처의 측면에서 보자면, 수돗물 정책은 환경부, 건교부, 보건복지부 등 여러 부서의 소관업무와 관련된 문제이다. 다시말해 수돗물의 수질은 환경부가, 수량 관리는 건교부가, 국민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안전성 문제는 보건복지부의 소관 사항이다. 가령 지난 '98년도에 서울특별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해서는 안되는 10가지 이유"를 통해 수돗물 속의 불소는 '제거대상 물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불소화 시행여부는 수질 전문가들이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주장은 '행정고유업무 임무론'에 근거한 주장으로 보이는데, 불소화가 추진론자들이 주장하듯이 단순히 보건당국만의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밝힌 것으로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지금과 같이 환경부 및 수질관리 당국 등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보건당국과 일부 치과계 전문가들만이 불소화 문제를 독단적으로 다루고 있는 제도적 현실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지역주민 의견수렴 과정에 관한 문제이다. 현재 불소화의 법적 근거가 되는 구강보건법의 제10조에 의하면 "기초자치단체장은 공청회 · 여론조사 등을 통하여 관계 지역주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돗물불소화 시행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의 불소화 관련 조항은 다분히 수돗물불소화 '추진'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게다가 현재 보건복지부는 사실상 각 지자체에 불소화를 시행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기초자치단체들은 불소화를 추진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한결같이 대학의 '치의학 연구소'(대부분 불소화의 효과와 안전성을 맹신하고 있는) 등에 불소화 사업 타당성 검토와 관련한 연구용역을 준다. 이러한 사전조치들은 불소화 사업의 안전성 및 타당성이 소위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검증되었다는 인상을 주민들에게 줌으로써 사업진행을 가속화시키게 된다. 또한 현재 불소화를 시행하고자 하는 지역들에서 실시하는 '설문조사'의 내용과 형식을 보면 그것이 전혀 공정성과 객관성을 갖추지 못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지역주민들이 불소화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불소화 사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설문지를 사용함으로써, 불소화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의료기술의 전문가 독점과 권위주의

  셋째,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올바른 지식습득과 정보의 기회'에 대한 문제이다. 구강보건법 제4조에 의하면, "국민은 구강보건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여 구강보건사업이 효율적으로 시행되도록 협조하고 스스로의 구강건강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적으로 '올바른 지식습득과 정보의 기회'를 명문화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강보건 문제는 건치 등 치과계 중심의 일방적인 논의로만 일관해온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것은 의료기술의 '전문가 독점'이라는 문제와 관련된 현대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논의를 독점하고 있는 치과 '전문가'들은, 수돗물불소화를 반대하는 집단을 '비과학적인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올바른 지식'을 왜곡시키고, 국민들이 불소화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는 '돌팔이 세력'으로 매도하기까지 한다. 또한 불소화를 반대하는 것을 마치 구강보건정책 자체를 외면하는 것인 양 몰아붙인다. 이러한 독단적인 견해는 당연히 권위적이고 하향적인 행정으로 나타나게 된다.
 

  과학기술중심사회의 딜레마

  넷째,과학기술중심사회의 딜레마에 관한 문제이다. 수돗물불소화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충치예방이라면 수돗물에 독성 화학물질을 첨가해 음용을 강요하는 방법밖에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발상은 충치발생의 근본원인에 대한 성찰이 없는 근시안적 해결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여기에는 기술결정론적인 사고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집행되는 과학기술 정책의 대부분은 '거대기술'의 성격과 형식을 띠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의사결정 및 집행도 정부당국 중심의 하향적 의사결정 체계를 가지게 됨으로써 지역사회의 특수성이 반영될 소지가 그리 높지 않다. 다시말해 과학기술중심 사회체계는 의사결정의 구조를 획일화시킴으로써 지역주민의 목소리가 정책결정과 집행에 반영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불소화도 주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요식적인 설문조사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는 등, 근본적으로 과학기술중심사회의 패러다임에서 나온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불소화, 지역자치, 풀뿌리 민주주의

  수돗물불소화의 시행 여부는 법적으로 기초자치단체장이 판단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상향식 의사결정체계를 구축하고 시민중심의 행정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기초자치단체장들은 최소한 수돗물불소화 사업에 있어서 앞에서 언급한 사항들을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정보제공에 있어서 편협되고 왜곡된 정보가 아니라, 불소화를 반대하는 측의 정보까지 시민들에게 공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절차상의 공정성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불소화 문제는 이제 지역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사무국  office@no-fluori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