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

 

  안전성 검증 없이 불소화 확대는 안된다   (칼럼)

  박인근

 

박인근 - 의사, 진주 한일병원 일반외과 과장
 《불소화반대소식》2000년 2월 제4호


 

 

 

 

 

 

 

 

 

  최근 한 중앙 일간지에 수돗물불소화의 확대를 요구하는 '국민건강을 위한 시민연대' 명의의 광고가 게재된 것을 보았다. 여기에 참가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면면을 살펴보니 불소화를 반대하는 쪽보다는 찬성하는 쪽 단체들이 우리 사회의 시민권력이나 지식권력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튼 밝고 맑은 사회를 지향하는 여러 시민단체가 수돗물불소화 문제를 두고 대립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슴아픈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수돗물불소화를 주도하는 곳은 서울대 예방치의학교실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이다. 수돗물불소화를 주장하기 시작한 그분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불소화는 충치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며, 미국에서 50년 넘게 시행한 결과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도 당장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수돗물불소화를 시행하지 않고 있는 서유럽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의 충치 이환율(어떤 기일 내의 질병 발생 건수의 그 기일 내 평균인구에 대한 비율)을 비교해 보면 비슷하거나 오히려 서유럽 쪽이 더 낮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민보건을 위해 두 선진대륙을 어쩔 수 없이 모방해야 한다면, 강압적인 수돗물불소화보다는 시민의 자율적 선택을 존중하는 서유럽 모델을 따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건치 등 국내의 불소화 추진세력은 반대론 측에서 제기하고 있는 불소의 인체 유해성을 철저히 무시, 부정하고 기존의 논리를 되풀이해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쉽게 간과되고 있는 몇가지 사실적인 함정이 있다. 먼저, 수돗물불소화의 원료가 되는 불소화합물들은 수돗물 정수과정에서 투입되는 여러 물질 중 가장 유독한 독극물이다. 물론 추진론자들은 마셔도 될 정도로 희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수장 근로자들이 고도의 산재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불소가 독극물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조차 '근거없는 공포감을 조장하기 위한 선동'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50년 넘게 안전했다는 미국에서는 불소 혼합장치를 통해 불소화합물이 과다 투여되어 주민과 초등학생들이 사망한 사고가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물론 그 이후로 대도시 지역의 대단위 정수시설에서만 수돗물불소화를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소중한 생명들이 희생된 후에야 말이다. 또한 불소화된 수돗물을 정수해서 투석액으로 사용하는 인공신장실에서 정수관리의 실수로 불소가 과다유입되어 혈액투석을 받던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정수관리를 소홀히한 병원의 잘못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공신장실을 운영하는 병원장님께 우리나라 사정을 문의했더니,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수관리가 허술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유사한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대답했다.

  《해리슨 내과학》이라는 내과의사들의 교과서가 있다. 그 책의 부록을 보면 위장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불화나트륨의 양은 5-20㎎이라고 되어있다. 불소이온으로 환산하면 2-9㎎이다. 1996년 '인천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 작성한 보고서에는 인천시민의 하루평균 불소섭취량을 6.719㎎으로 추정하고 있다. 위장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드는 양이다. 물론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는 쪽에선 산출방법의 타당성에 대해 격렬한 비난을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국민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보건사업을 시행하면서 정부 차원의 가장 기초적인 사전조사도 없었다니! 국민 일인당 평균 불소섭취량에 대한 체계적인 사전조사가 있었는가? 없었다. 건강한 성인 남녀의 일일 체중당 뇨중 불소 배설량에 대한 적합한 사전조사가 있었는가? 없었다. 한국인에게서 이환율이 유독 높은 질환 중 음식과 관련된 질환들(위장장애, 위암, 색소성 담석증 등등)과 불소섭취 및 대사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우리나라 상황에서의 면밀한 사전조사가 있었는가? 물론 없었다.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는 분들의 높은 학식을 존경한다. 시민건강을 생각하는 그분들의 뜨거운 열정에도 깊이 공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께 간절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우선 수돗물 불화사업의 확산을 중지해주시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에 열거한 것을 포함한 여러 필수적인 사전조사를 시행하도록 정부내 관련부처를 계몽해주시라.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 안전을 거듭 확신하게 된다면 시민의 충분한 동의를 받아주시라. 그래도 많은 시민이 수돗물불소화를 반대한다면, 시민의 자율적인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소외계층의 치아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인내를 가지고 모색해주시라.

  내가 사는 진주는 이미 수돗물에 불소가 투입되고 있다. 우리집 수돗물을 슬금슬금 피하면서 사회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수돗물 이외의 다른 식수를 이용할 수 없는 불우한 이웃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이것은 소시민적인 윤리의식일지도 모른다. 부디 파워엘리트들의 독선에 의해 소시민적인 윤리의식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삶을 나누는 모든 사람들이 '아픔'이라는 화두로 반목하지 않기를 바란다. 수돗물불소화를 반대하고 찬성하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사무국  office@no-fluori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