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

 

  유전자조작식품이 불소화 문제에 주는 교훈   (칼럼)

  허남혁

 

허남혁 - (사)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연구간사
 《불소화반대소식》2000년 4월 제6호


 

 

 

 

 

 

 

 

 

  필자는 유전자조작 식품 반대운동을 펼쳐나가는 활동가로서, 최근 수돗물불소화 문제가 유전자조작 식품 문제와 매우 유사한 측면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불소화 관련 논쟁속에서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두 가지 측면을 다시 짚어보자.

  첫째는 몬산토와 듀퐁이라는 기업에 관한 것이다. 화학기업으로 출발한 두 기업은 40년대 미국의 원자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속에서 불소를 생산하는 역할을 했음을 관련 문헌들을 보면서 최근에 알게 되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와 수돗물불소화의 관계에 대해서는 녹색평론 특별자료집《수돗물불소화의 문제》에 수록된〈불소, 치아, 원자탄〉에 자세히 나와있다.) 그런데 이 두 기업은 고엽제, DDT, CFC를 생산했던 주범이기도 하고, 최근엔 생명공학 기업으로의 변신을 완료하고 유전자조작 종자를 개발하고 있다. (몬산토는 전세계 종자 2위 화학 3위, 듀퐁은 종자 1위 화학 4위의 기업이다.) 농약을 만드는 회사가 종자도 같이 개발하는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문제들은 다국적기업들의 파렴치한 이윤추구가 음험한 배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둘째는 유전자조작 식품과 불소화 모두 '환경정의'에 심각한 타격을 가한다는 점이다. '환경정의'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환경적 불평등이 서로 같이 간다"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두 가지 이슈 모두 경제적 약자들의 건강과 생활환경을 집중적으로 심각하게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유전자조작 식품의 경우, 최근 국민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국산콩을 선호하는 탓에 수요가 큰 폭으로 늘면서 국산콩 값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다. 국내 농업과 농민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내년부터 유전자조작 식품에 대한 의무표시제가 시행될 경우 유전자조작 콩과 자연산 콩의 가격 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돈 없는 서민들과 제3세계 국민들이 유전자조작 식품을 먹기 싫은 마음은 인지상정이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값싼 유전자조작 식품을 사먹어야 하는 운명에 처함을 뜻하는 것이다. 나중에 혹시라도 좋지 않은 영향이 나타날 경우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경제적 약자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불소화의 경우를 보자.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서는 지금도 정수기를 사용하거나 생수를 사먹는 등 식수용으로는 수돗물을 거의 쓰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불소가 장기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건강상의 위해를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형편이 되지 못하는 계층에서는 무조건 독성물질인 불소가 들어있는 수돗물을 끓여먹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상황이 수십년 지속된다면 계층간에 심각한 건강상의 불평등을 가져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더구나 불소는 체내에 축적되는 물질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값싼 보건정책"이라고 선전되는 불소화가 오히려 심각한 건강상의 불평등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사회에서는 부의 불평등분배를 가져오지만, 위험사회에서는 위험요인의 불평등분배를 가져오게 된다.

  이와 같은 세대 내의 불평등 발생도 문제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세대간 불평등 문제이다. 유전자조작 식품이나 불소 모두 단기적인 영향보다도 장기적으로 미치는 환경적 영향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대가 근시안적 사고로 벌이고 있는 이같은 모든 일들이 결국 우리 후손 세대에 고스란히 업보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60-70년대 산업화 시기 동안 생산되었던 다이옥신과 환경호르몬이 이제 우리 세대의 생식력과 생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불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수돗물은 먹는 데만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므로 결국은 강으로 흙으로 돌아갈 것이며, 불소는 차곡차곡 생태계에 쌓이게 될 것이다.

  불소화 문제는 결국 60년대의 DDT 문제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불소는 치아를 건강하게 할 뿐 먹어도 안전하다는 주장은 60년대 어린이들에게 DDT를 뒤집어 쓰게 하고서, 이나 빈대를 죽이지만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던 것과 똑같다. 이것은 또한 그동안 미국 등 유전자조작 농산물 및 식품의 수출국가들이 내세워온 '실질적 동등성'의 논리, 즉 유전자조작 농산물은 재래 농산물과 다를 것이 없다는 논리와도 일치한다.

  이제 인류는 DDT, 오존층 파괴, 지구온난화 등의 환경재앙을 겪으면서 '사전예방원칙'에 대하여 서서히 눈을 떠가고 있는 중이다. 과학적으로 결정적인 증거가 현재는 없더라도 재앙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막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합의가 국제적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으며, 실제로 지난 1월 말에는 식품을 포함한 유전자조작생물체(GMO)에 대한 규제를 합의한 '생명공학 안전성의정서'가 몬트리올에서 채택되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인류는 엄청난 시행착오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이제 당연히 불소화 문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시대적 요청이자, 국제적인 인식이다.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사무국  office@no-fluori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