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

 

  수돗물불소화 ― 과연 타당한가

  장택희

 

 장택희 - 원불교 부산 환경연구회 회원. 공학박사
<수돗물불소화를 우려한다> 2001 전국대회 자료집


 

 

 

 

 

 

 

 

 

  수돗물에 제발 불소화합물을 넣지 말아달라는 호소문을 쓰려고 하면서 풀기 어렵게 엉킨 매듭을 한칼에 끊어버렸다는 알렉산더를 생각했습니다. 그런 지혜가 저에게서 솟아오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녹색평론사와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에서 간행한 자료들을 읽으면서 그런 꿈같은 소망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자료를 조금이라도 차분한 마음으로 ―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 읽은 사람이라면, 불소화합물이 충치예방에 아무리 효과가 있더라도 수돗물에 넣는 것만큼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하다고 새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료를 읽고도 여전히 읽기 전과 다름없이 수돗물에 불소화합물을 투입하자고 주장하는 사람 또는 집단이 있다면, 그들을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나 집단으로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말은, 설사 불소화합물이 충치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 해도 그것은 치과의사들이 충치환자들이나 원하는 사람에게 약물로서 개별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지, 충치와는 무관하거나 원하지도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차별로 수돗물에 타서 마시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불소화' 문제에 관한 한 '전문가'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의견을 말하고자 합니다.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가

  모든 논쟁이 그렇듯이 서로간에 논쟁이 진행되다보면 '구경꾼'들 눈에는 마치 이것이 자존심 싸움이나 감정대립처럼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수돗물불소화 논쟁도 그렇게 비쳐질지 모르겠습니다만, 문제의 본질을 한번 가만히 생각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수돗물불소화란 모든 국민이 마시는 수돗물에 불소화합물(주로 불화나트륨이나 불화규산)이라는 수상한 화학물질을 넣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국민 중 상당수가 충치로 고통을 받기 때문이고, 치과의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년 아동들의 충치발생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랍니다.

  수돗물불소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기 전에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화학물질(또는 약물)의 안전성을 입증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입니다. 현재 수돗물불소화에 사용되는 불소제제 중의 하나인 불화나트륨은 분명히 독극물로 지정되어 있는 물질이랍니다. 맹독물질의 대표격인 청산나트륨의 10분의 1내지 20분의 1 정도의 급성독성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치사량은 2.5-5g이며 1g이면 여섯살짜리 어린아이 1명을 죽일 수 있답니다(《위험하다! 불소를 이용한 충치예방》, 녹색평론사 1999년, 98면). 혹시 불소화 추진론자들은 이런 사실마저 부정하는 걸까요? 자,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런 독극물을 저농도로 관리할 때 안전성을 입증하는 일은 불소화 추진론자들의 당연한 책임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불소화 추진론의 주도역할을 하는 치과의사들만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미량의 독극물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수돗물을 통해 체내로 들어와서 어떤 작용을 하고 체내에 얼마나 축적이 되는지를 입증하는 일이, 그리고 나아가서 심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환경에는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의학자와 독성학자, 화학 및 화공학자, 생리학자, 환경공학자, 심신상관의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연구를 수행해야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연구가 수행된 적이 없습니다. 수행되기 어려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심지어 이미 입증했다고 큰소리로 주장만 하면 되는 걸까요?

 

  사례1) 탈리도마이드라는 비(非)바르비투르산염계 수면제는 서독에서 개발되어 1956년 '콘테르간'이라는 상품명으로 세계 각국에 보급되었습니다. 뒤에 위장약(주로 임산부의 입덧 방지약)으로도 쓰였는데, 이를 복용한 임산부에게서 사지에 결손이 있는 해표지증(물개처럼 손과 발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증상)의 기형아가 태어났습니다. 그뒤 1961년에야 독일 의학자 W. 렌츠에 의해 임산부가 장기복용할 경우 해표지증의 기형아를 출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지적되어 발매금지되었고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등지에서도 이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서독에서는 5-6천명, 일본에서는 1,200명에 이르는 기형아가 출생하여 사망하였습니다. ('야후 백과사전'에서)

  사례2) 유기염소계 살충제의 하나인 DDT는 1939년 스위스의 P.H. 뮐러 등에 의해 그 살충성이 발견되어 개발되었고 뮐러는 이 업적으로 1948년 노벨 생리 . 의학상을 받았습니다. DDT는 수십년간 마디충, 멸구, 배추흰나비 애벌레 등의 농업해충뿐 아니라 파리, 나방, 이, 벼룩 등 위생해충에 유효한 것으로 알려져, 제2차세계대전 전부터 전후에 걸쳐 대량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포유류에 대한 급성독성은 약하나 동물체내의 조직, 특히 지방조직에 흡수 . 축적되어 만성독성을 보이는데, 이렇게 잔류성이 높은 것이 문제가 되어 지금은 사용을 금지하는 나라가 많아졌답니다. ('야후 백과사전'에서)

  사례3) 미국 듀퐁사에서 개발한 프레온이라는 물질은 우연히도 불소와 탄소 그리고 수소 또는 염소가 화합된 물질인데 무색무취의 기체로 화학적, 열적으로 안정되고 부식성, 독성이 낮으며 인화성이 없습니다. '기적의 물질'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장품용 에어로졸제, 냉방 . 냉장 . 냉동용 냉매, 고급용제, 세정제, 진화제, 우레탄 . 폴리스티렌폼 등의 발포제 등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습니다. 사용후 이들 프레온 가스는 그대로 대류권에 축적되었다가 결국에는 성층권으로 올라가 태양자외선에 의해 분해되면서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작용하여 이제는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 되었습니다. ('야후 백과사전'에서)

  사례4) 우리 몸에 해가 없다고 허가되었던 합성 식품첨가물 중에,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판명되어(또는 다른 이유로) 허가가 취소된 것이 1970년대에 51가지이고(《최열 아저씨의 우리 환경 이야기》1권, 청년사 1994년, 64면) 지금도 허가물질이었다가 유해물질로 판명되는 일이 계속되고 있어도 우리 국민들은 그다지 놀라거나 분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어떤 목적에 효과를 나타냈던 '안전한' 물질이 시일이 지나서 부작용이 발견되어 폐기된 사례를 들면서 인위적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혹시 불소화 추진론자들은 불화물이 지난 50년간이나 폐기되지 않았으니 안전하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50년 아니라 100년이 지났더라도 새로운 위험성이 의심되거나 부정적 연구결과가 발견된다면 100년을 지탱했던 안전성에도 금이 가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에 추진론자와 반대론자의 어려움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문제가 될 수 있는 100가지의 경우가 있다고 할 때 추진론자는 100가지가 다 안전함을 증명해야 하지만, 반대론자는 어느 한 경우라도 위험의 가능성이 있으면 그것을 반대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시한번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싶은 것은, 어떤 화학물질이 안전하다고 입증이 되기 전까지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수도 없는 화학물질을, 확실한 유독물질이 아니라고 함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식을 포함한 인간의 생명을 대상으로 끝도 없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험가능성을 염려하는 사람에게 위험가능성이 사실로 나타날 확률을 밝히라는 식의 태도는 부당한 것입니다.
 

  불소화론은 파시즘적 발상

  저는 최소한 치과의사들이 자신이 가진 전문지식을 통해 국민의 치아건강을 향상시키고, 국민과 나아가서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어하는 것은 진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일지도 모릅니다. 안정된 수입과 어느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보장될 때에, 치과의사로서 무언가 사회에 기여할 일거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은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돈과 시간이 남아 술과 도락 등 하염없는 타락의 길에 들어서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바로 '좋은 일'을 한다(사회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점입니다. 내가 좋은 일을 하려는데 누군가가 막는다는 생각이 들면 당연히 막는 사람이 미워질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작용의 원리에서 파시즘이 생겨난다고 말하면 너무 섣부른 비약일까요?

  수돗물불소화가 아니더라도 치과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자발적 단체가 생겨나서 지역마다 일주일에 하루 무료진료를 한다든지, 치약회사에 치아건강에 유익한 치약을 만들도록 요구한다든지(언젠가 한 치과의사가 제 강의를 듣고 제가 제시한 볶은소금 양치법을 비판하면서, 자신도 치약의 무익함 내지는 유해함을 알고 있는 터라 주로 맹물로 닦는데 구취를 제거할 목적으로만 가끔씩 치약이나 양치액을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제대로 된 치아건강법을 연구하여 국민적 교육을 실시한다든지, 설탕소비를 감소시키기 위한 국민적 운동(이건 언젠가 저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만)을 한다든지 … 이런 일들에 비한다면 수돗물불소화 사업은 치의학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냄새가 나고, 일단 시행이 되고 나면 자질구레하게 신경쓸 일도 없이(그러나 생명운동은 얼마나 좀스럽고 자질구레한 일이 많은지요), 한동안은 손쉽게 생색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치과의사로서, 충치가 줄면 수입이 줄어들 일인데도 불소화사업을 시행토록 힘썼다는 데 이르면 그 숭고한 '희생봉사정신'은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비꼬는 듯한 표현은 안 쓰려고 했는데 이 말은 꼭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치과의사 선생님들은 진짜로 불소화 사업으로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렇지도 않은데 이론적으로 혹은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면 앞으로라도 그런 말은 안 썼으면 좋겠습니다.

  요컨대 수돗물불소화 사업은 치과의사들이 해야 할 사회적 공익사업일 것이라는 과장된 심리상태가 빚어낸 해프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치과의사에게 치아건강과 관련하여 일정한 역할을 분담할 일이 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불소화 사업은 치과의사들이 사명을 가지고 앞에 나서서 감당할 일이 아닙니다. 조금만 신중하게 생각해보아도 이건 약간이 아니라 많이 '오버'하신 겁니다. 불소화론자들의 그런 목적지향적인 심리상태가 객관적이지 못한 데이터의 해석을 가져오고, 반대론자들이 끊임없이 제기하는 다양한 측면의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수십년 된 논리를 되풀이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이라는 상(相)을 버리시라고 요청하고 싶지만 그것은 주제넘은 짓인 것 같고, 다만 아무리 좋은 일이더라도(특히 아무리 좋은 약이나 치료법이라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결정적으로 생각되는 이 언급이 별로 결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저는 안타깝고 두렵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수돗물불소화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추이가, 인류가 양차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지금까지 그토록 종식시키고자 했던 파시즘이 아직도 우리 생활 속에 버젓이 살아있는 증거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이 시대의 많은 논객들이 아직 이 주제를 관심있게 생각하지 않는 점에 대해, 그들의 안이함과 무식함 또는 생명인식의 저열함을 질타하고 싶습니다. 이런 언급이, 내가 관심있게 생각하니 당신도 관심있게 생각해야 된다는 식의, 저의 파시즘적 사고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하신다면 그 점에 대해 더이상의 논전을 여기서 전개할 여유는 없습니다.
 

  물관리 공무원들께

  수돗물에 불소화합물을 투입하겠다고 했을 때 수돗물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불소투입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지 않고 있으므로 모든 상수도 관련 공무원들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겠지만, 별 생각없이 불소투입에 응했다면 참으로 무책임한 망동(妄動)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지금 수돗물이 정상적인 식수로 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염소소독에 따른 발암물질(THM)과 누수와 관련된 이물질의 유입가능성, 수도관의 노후로 인한 오염물질, 건축법의 개정시기와 관련되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아파트 아연도관의 피해와 물탱크 관리부족에 의한 수돗물의 오염 등 이미 수많은 '오염물질의 칵테일'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는 현재 상태로 부족하신지요? 기술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물관리 공무원으로서 물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조차 제대로 서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말한다면, 물은 자연스러운 상태를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지역마다의 특성을 간직하게 하면서, 도시화와 산업화, 천박한 문명화로 인해 발생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불가피한 처리의 최소화를 지향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설사 어떤 이유로 약물의 투입을 요구해왔더라도 수돗물 관리 공무원으로서 열띤 토론을 거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수돗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자는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수돗물을 불신하고 정수기가 생활의 필수품이 된 상황에서 불소투입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입니다. 불소투입을 반대하는 자료(반봉찬〈수돗물 불소투입은 절대 안된다〉,《과학동아》1998년 10월호)를 보니 상수도수의 1%가 식수로 쓰이게 된다는데 사실입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투입된 불소화합물의 99%는 그대로 버려지는 줄을 알면서도 이 일을 해야 되는 겁니까? 거기다가 충치 예방효과가 예상되는 13세 이하의 인구가 약 25%이고 예방효율이 50%(불소화 추진론자들의 주장)라니, 결국 불소화된 물로 기대할 수 있는 충치 예방효과는 0.0125%(8000분의 1) 정도라는 계산은 상식선을 벗어날 만큼 복잡한 것 같아 이 정도로 그만두겠습니다.

  애쓰시는 분들에게 격려는 고사하고 힘빼는 소리만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수돗물 불소투입 논쟁을 계기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물을 관리하는 분들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불어 국민이 마시는 수돗물을 제공하기 위한 입체적인 노력 ― 공무원, 환경운동가, 기업, 국민 ― 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 역시 일개 단체나 연구기관이 짧은 시일 내에 할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변화, 상수원의 국민적 감시와 보호 및 관리, 관련법의 개정, 수도관의 개량 및 교체, 중수도 개념의 도입, 절수방법의 개발, 제반 재원마련 등 장기적 안목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소화 추진에 참가한 시민단체들에게

  우리나라의 시민운동 현황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유행을 타고 잘 알려져 있다는 환경운동단체에 국한해 말하더라도 매우 어려운 살림을 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내는 회비로 단체가 운영될 날을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꿈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1992년 봄) 환경이 죽으면 그 무엇이 살 수 있겠는가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소위 환경운동(저는 '살림운동'이라고 말합니다만)에 뛰어든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30만원 정도의 불안정한 수입에, 운동가적인 자질도 부족한 터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게다가 의지마저 박약하여 1년도 채 못되어 학원강사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지금의 직장에 취직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저는 스스로 비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는 변명하는 논리를 생각해내며 살아왔지만 아직도 환경운동을 비롯한 시민운동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당시의 동료, 선후배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진심입니다.

  그런 제가 지금 부산지역의 불소화 추진에 참여한 시민단체들에게 비판의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빚을 진 마음이 있기에 더 모질게 비판하더라는 말을 듣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먼저 저는 '건강치아연대'에 참여한 부산지역 47개 단체의 명단1)을 보면서, 뭐랄까 아직 우리의 시민운동은 한번 혹은 몇번 더 추락을 경험한 후에야 단단하게 다져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전혀 악담을 하는 심정이 아닙니다. 단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 몇달이나 될까요? ― 그렇게 많은 단체가 모였다는 사실에, 과연 그 많은 단체의 실무자들이 불소화에 대한 찬성과 반대측의 자료를 면밀히 검토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사실은 단언하고 싶습니다) 이는 아는 분들끼리 이름을 빌려준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방식은 시민단체들의 주요 비판대상인 정치모리배들이 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바 있듯이 저는 분명히 시민단체의 구성원들이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의 순수성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일 거라고 생각되더라도, 잘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하여 서로 이름을 빌려주는 행위는 사라져야 합니다. 이는 시민운동단체들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또 전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우리나라 또는 부산의 시민운동 수준을 드러낸 사건에 다름아닙니다. 또한 남들이 시민운동가들의 활약과 희생봉사정신에 대해 칭찬하더라도 시민운동가 스스로가 무어나 된 듯이 경거망동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바로 이 비판을 듣게 될 날이 오더라도, 오늘 저의 이 말은 타당한 측면을 지니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모진 비판을 듣고(그것도 비판할 자격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인간으로부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미움과 분노가 솟구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백하건대 저 역시 아직 그러한 마음공부의 수준을 벗어났다고 자신하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그래도 시민운동을 결심하신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셔서 다시한번 숙고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미 이름을 넣은 단체들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으신 마음으로 불소화에 대한 찬반 양측의 자료를 꼭 한번 신중히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특히 불소화를 찬성하기 위해서는, 불소화 반대론자들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가 전혀 근거 없음을 증명하거나 확신하셔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결정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각 단체의 목적을 반조하셔서 크게 관련이 없다면 굳이 연대에 이름을 넣을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 관련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각 단체의 창립목적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발 떨어진 일에 발을 담그는 일은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도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사적인 관계는 원만히 이어가시되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이나 나름대로의 소신이 없는 일에 이름을 빌려주는 일은 결코 없어야 시민단체가 건강하게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어쩌면 고통스러운 노력을 지속할 때에 시민들이 믿고 시민단체의 밑바탕이 되어줄 날이 올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느낌입니다만 소위 시민운동가들이 조금 부드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운동가들이 무언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투쟁하고 비판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난을 감내한 역사를 생각할 때에 갑자기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시민운동가들의 가슴 속에는 확고한 신념에 바탕한 무한한 기쁨이 솟구쳐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의 가슴 속에 기쁨은 고사하고 투쟁의 대상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가득하다면 시민운동가들이 바라는 결과는 오지 않습니다. 그때야말로 용기를 내어 시민운동가의 길을 그만두거나 잠시 쉴 때입니다. 나름대로 몰두해서 한참 비판을 하다보니, 주제넘은 말씀까지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현대의학의 폭력성과 수돗물불소화

  저는 약간의 화학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수돗물에 투입되는 불소화합물이 사람에게 해로울 가능성이 대단히 클 것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구 문화방송에서 방영되었던 '수돗물불소화의 문제'를 다룬 시사 프로그램을 보니, 경북의 한 정수장에서 수돗물에 넣는 불소화합물(불화나트륨)의 포장종이에는 '유독물질'이라는 글자와 "음식물 가까이에 두어서는 안된다"는 경고문구가 선명히 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수에 넣기 위해 품질이 특별히 관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보도내용을 보니 불화나트륨은 허름한 창고에 아무렇게나 보관되고 있었고 담당 관리자는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지금 수돗물불소화에 사용되고 있는 불화나트륨은 대부분 알루미늄 등의 생산공정에서, 불화규산은 인산비료 생산공정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입니다. 이것은 '충치예방'이라는 의료의 목적을 위해 특별히 생산되거나 관리되는 의약품이 아니라 중금속 등 불순물을 포함하고 있는 산업폐기물이라는 말입니다. (부산에서 수돗물불소화가 시행된다면 십중 팔구, 현재 수돗물불소화를 하는 다른 대부분의 지역과 같이, 값이 싸다는 이유로 남해화학 같은 화학비료 회사에서 나오는 불화규산을 쓰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의학용 산소와 공업용 산소가 혼용되어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현재 수돗물에 투입되고 있는 불소화합물의 성분에 관한 규정에도 많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데, 이에 대하여 아무런 외부의 영향력이 없는 상태에서 각계의 전문가들이 검토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특히 중국)에서 수입되는 염화나트륨이 화학물질로 취급되어 상공자원부의 관리를 받다가 1996년에야 보건복지부의 관리로 넘어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관리의 수준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잘 모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병원에서 환자에게 사용할 산소를 공업용 산소의 관리기준에 따라 관리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아마 그래도 다른 곳은 멀쩡한데 특별한 사정으로 산소가 부족한 경우라면 공업용 산소의 혜택으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산소와 같은 것은 아마 부작용이 곧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에 비해 덜 치명적인 염화나트륨은 아직도 엄격한 농도관리 없이 소금과 혼용되어, 식용소금으로 둔갑하여 우리의 식탁에 버젓이 오르고 있습니다. 약간 불순한 염화나트륨을 식용으로 사용해도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런 정도의 수준을 보이는 우리나라에서 수돗물에 불소화합물까지 넣겠다니, 진작부터 "염화나트륨은 소금이 아니니 천일염을 볶아서 먹으라"느니(졸고〈살림에 대한 몇가지 斷想〉,《녹색평론》1999년 11-12월호), 농약이 없는 유기농산물을 선택하고 생협운동이 살아나야 한다느니 하며 떠들어온 저로서는 실로 가슴을 치고 팔딱팔딱 뛰고 싶은 심정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체질의학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도당 주사라면 몸의 기능이 많이 떨어진 사람에게 구세주 같은 것인데, 체질에 따라서는 쇼크사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누구는 인삼을 꿀에 재어 먹으면 기력이 회복된다며 상복하는데, 어떤 이는 열이 나고 얼굴이 벌개진다고 싫어합니다. 어떤 한의사는 부자라는 약재를 잘 써서 명의라는 소리까지 듣다가 그만 자신의 자식을 죽이고 나서는 의업을 그만 두었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구는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면 좋다는데, 누구는 아예 술을 입에도 못 대거나 그렇게 땀을 흘렸다가는 큰일난다며 한사코 피합니다.

  제 딸은 결핵예방주사를 맞았다가 그만 임파선 결핵에 걸렸습니다. 그때 의사선생님은 따져 묻는 저에게 자신이 그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인데(저도 괜히 공학박사학위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6-7백명 중에 한명 꼴로 일어나는 일이라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 자신이 결혼 직전 비슷한 병을 앓다가 한약을 먹고 낳은 경험이 있어서 두말없이 나와, 저를 고쳐준 한의사 처방으로 회복시켰습니다. 한의학을 광고하기 위한 글은 물론 아닙니다만, 저는 양약(특히 항생제)을 안 먹은 지 오랩니다. 앞으로는 한약도 가능하면 먹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만 양약에 비해서는 거부감이 덜합니다. 그것은 제 자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수돗물에 투입된다는 불소화합물은 체질에 관계없이 유익하거나 해가 없을까요? 그런 연구가 이루어진 적이 있습니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런 문제의식이 설정된 적이 있었는지조차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제 가족 중에 누군가가 혹은 그 누구라도 불소화합물이 투입된 물을 마시며 살다가(그렇게 안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만) 10년 혹은 20년 후 그 부작용으로 병을 얻거나 죽어갈 때에 천명에 한명 혹은 만명에 한명꼴로 나타나는 일이니 너무 억울해 하지 말라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제가 사는 집에는 불소화합물을 투입하지 않은 수돗물을 공급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충치는 평소에 단 것을 적게 먹고, 자기 전에 이를 야무지게 닦는 일로 예방하겠습니다. 혹시 충치가 생기면 저의 식생활이 치아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몸의 메시지로 알고 겸허히 받아들여 치아전문가의 충고에 따를 것입니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불소화합물의 투입에 따라 발생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치아불소증(반점치), 골불소증(둔부골절), 각종 암과의 관계, 두뇌기능의 손상, 알루미늄과 납농도의 증가 등이 불소화 추진자들의 말대로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각계의 전문가들이 충분히 연구하여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정당한 길이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겁쟁이라고 비웃더라도 저는 정말 불소화합물을 투입한 수돗물이 무섭습니다. 제발 수돗물에만큼은 불소화합물을 넣지 말아주세요.


2000년 6월 7일 부산지역에서는 수돗물불소화 추진을 목적으로 '건강치아연대'가 결성되었다. 이 글은 부산 시민으로서 '건강치아연대'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쓴 것이다.  

1) 가톨릭 노동상담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건강사회연구회, 경제주권수호-국가보안법철폐를 위한 부산지역청년단체 연석회의, 광장도서원, 금샘 사랑방 문화클럽, 기독교 부산노동상담소, 노동영상집단 공장, 노동자를 위한 연대, 노래극단 희망새, 늘푸른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도시빈민 사회복지 선교회, 민주노동당 부산시지부,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민주주의 민족통일 부산연합, 민중의료연합,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부산경남 총학생회연합, 부산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 부산노동자연합, 부산노동자회, 부산문화센터, 부산 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산 민주화실천 가족운동협의회, 부산 보육교사회, 부산 성폭력상담소, 부산 실업극복지원센터, 부산여성회, 부산인권센터, 부산 참여자치시민연대, 부산 청년정보문화센터, 부산YMCA, 양산 노동민원상담소, 여성문화인권센터, 연제공동체, 영남 노동운동연구소, 외국인노동자 인권모임, 작은이를 생각하는 사람들, 장애인총연합, 전국 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 전국여성노조 부산지부, 종교인평화회의, 한국 구강보건협회 부산시지부, 한국노총 부산지역본부, 해운대를 사랑하는 모임 (이상 47개 단체)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사무국  office@no-fluori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