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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돗물불소화, 누구를 위한 강제의료행위인가

  박병상

 

 

 

 

 

 

 

 

 

 

 

  박병상 -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출처 - <환경미디어> 2005년 10월호


토머스 쿤은 일찍이 과학기술 분야에도 패러다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절대 진리를 밝히는 까닭에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이라고 믿었던 관념의 철옹성을 뒤흔든 토머스 쿤의 주장은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현실에서 정확하게 반영된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완벽하게 실험하고 분석한 과학이나 기술도 개선된 방법으로 들어다보면 허점이 눈에 띄니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자료 해석도 학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권위주의에 따른 편견도 개입할 수 있다. 기존 학설이 새로운 학설과 만나 충돌하며 경합하다 주도권을 넘기는 현상에 과학도 예외가 아니다.

수돗물에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한 학자의 주장은 관계당국을 당혹하게 했고, 당시 ‘공식’이라는 권위를 가진 방법으로 재조사한 결과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당국은 눈을 치켜뜨며 발표했다. 그렇다면 수돗물에 바이러스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방법을 새롭게 바꾸어 과거에 볼 수 없던 결과를 얻어내는 건 과학의 상식이다. 수돗물에 바이러스는 분명히 있었다. 당국은 그 바이러스가 얼마나 위험하고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 어떻게 제거해야 안심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옳았다. 기존을 고집하며 진실을 호도하다가 망신당하고 권위만 떨어졌다.

본질을 수정하지 않고 핵폐기장이라는 용어를 연구소인 양 원전센터로 바꾼 핵폐기장 추진세력의 혹세무민 의도와 유사하게, 수돗물불소화사업을 수돗물불소농도조절사업으로 최근 개명한 수돗물불소화 추진세력(이후 추진세력)은 수돗물에 불소를 0.8ppm 농도로 섞으면 안전하게 충치를 예방할 수 있다고 아직도 주장한다.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와 그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국 구강정책과는 ‘정설’이라는 낡은 우산에서 나오지 않으며, 세계 곳곳에서 위험성이 속속 드러나고 유수 국제학술잡지에 게재된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부정적 사례를 여전히 백안시한다.

불소는 쥐약과 살충제의 주성분인 맹독성 물질이다. 수돗물에 첨가하는 인산비료공장의 부산물인 불화규산을 담은 부대에는 해골마크가 선명하다. 이와 같은 독극물이라도 낮은 농도로 마시면 괜찮을까. 새로운 증거를 무시하는 추진세력의 정설은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아니다. 뼈에 불소가 농축되는 현상은 추진세력도 인정하는데, 나이 들어 치명적인 골절을 당할 수 있고 뼈에 암을 발생시키며 지능까지 저하시킨다는 학술지의 논문들은 분명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이에 생기는 반점은 미용 측면의 예외적인 현상이라기보다 감추고 싶은 결함이고, 치료하자면 개인은 거액을 준비해야 한다. 고가의 설비비용을 제외하고 인구 일인 당 몇 백 원이면 충분하다는 불소화 비용을 크게 초월한다.

추진세력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50여 개국에서 수돗물불소화를 실행한다고 주장하지만, 10%도 안 되던 우리의 수돗물불소화지역들마저 실상을 안 시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사업을 속속 취소했고, 종주국을 자체하는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반대 목소리가 거세 수돗물불소화가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7세 이하 빈곤층 어린이에게 효과가 있다지만 이가 없는 아기에게 위험하다는 미 보건당국의 경고를 시민에게 알리지 않는다. 미국 영향권에 있는 캐나다 수돗물불소화 지역인 토론토와 프랑스 영향권인 몬트리올 사이에 충치의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사례를 주목하지 않는다. 불소를 미화하는 미국과 달리 프랑스와 같은 유럽은 수돗물불소화를 죄악시 한다는 사실을 추진세력은 감추려든다.

불소는 몸에 흡수돼 이를 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양치나 칫솔질을 통한 접촉 효과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마시는 수돗물에 불소를 넣을 일은 타당하지 않다. 뱉어내는 치약이나 양치액으로 충분하다. 추진세력은 공중보건사업을 주장하지만, 공중의 민주적 동의도 없는 수돗물불소화는 아무리 거룩한 표정을 지어도 부당하다. 비타민도 개인에 따라 부작용이 있듯, 불소에 대한 반응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지역과 식성에 따라 불소 섭취량도 제각각이다. 충분한 역학조사 없이 강요하는 0.8ppm 불소화는 어처구니없다. 불소가 싫다면 생수를 사 마시라는 추진세력의 태도에서 전체주의 냄새가 난다. 밖에서 먹고 마시는 음식과 음용수는 어쩌란 말인가. 백보천보 양보하여 7세 이하 빈곤층의 충치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치자. 그들에게 불소 농도가 조절된 음용수를 무료로 보급하는 보건사업이 사리에 맞지 않은가. 충치를 유발케 하는 과자나 음료의 자제를 당부하고,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려는 정책의지와 더불어 식후 양치를 적극 홍보하는 자세가 근본적이 아닌가.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이번 구강보건법 개정안은 무모하다. 강제 조항도 물론이지만, 과반수 반대로 사업을 취소할 수 있다니 교활하다. 투표인 과반수 지지도 없이 당선된 의원들은 주민 과반수 의견을 민주적으로 모으기 쉽다고 여기는가. 더구나 보건복지부의 여론조사를 선행조건으로 요구하는데, 일방적 여론조사에서 공정성을 누가 어떻게 보장하려는가. 이번에 제출한 개정안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반민주적 폭거의 사례로 의정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연탄가스중독이 뜨거운 사회문제일 때 한 대학병원의사는 식초산이 효과 있다고 발표해 주목된 바 있다. 지금 의료계는 부끄러운 과거로 돌리지만 당시 떠들썩했다. 경험을 확대 해석하는 수돗물불소화도 같은 운명을 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납득할만한 임상조사도 없이 맹독성물질을 음용수에 섞는 행위를 내일의 과학은 어떻게 평가할까. 오늘의 과학도 위험성을 거듭 경고하는데, 가난한 계층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는 과거의 ‘정설’은 패러다임을 놓칠까봐 눈물겹게 무리한다. 대다수 시민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틈을 이용해 강제의료행위를 시도한다.

납과 담배의 해악을 한동안 무시했던 미국 보건당국은 시민보다 업자의 건강에 관심을 앞세운다. 그들의 주장에 끌려다니는 우리는 어떤가. 건강 사회를 위해 할 일이 수두룩한 세상에서, 섣부른 수돗물불소화는 누구를 위한 강제의료행위인가. 추진세력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