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

 

  수돗물불소화 주장은 파시즘

  수돗물불소화 개정안 왜 문제인가

  박승옥

 

 

 

 

 

 

 

 

 

 

 

 박승옥 ―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
《프레시안》2005/10/18 기고글


  1939년 스위스의 화학공업회사 가이기(Geigy)의 연구원인 파울 뮐러는 식물과 사람에게는 전혀 해가 없으면서도 파리, 모기, 이 등 해충은 깡그리 소탕해버리는 아주 기막힌 마법의 해충약을 개발했습니다. 게다가 이 해충약은 냄새도 없었고, 그 효과도 오래 지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값도 아주 싸게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를 시작한 지 4년만에 이룬 쾌거였고, 개발된 해충약은 가히 환상과 기적의 신물질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뮐러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백색의 이 하얀 가루가 바로 다름아닌 DDT입니다.
  
  1940년 스위스에서 특허를 얻어 1942년 시판에 들어간 DDT는 2차 세계대전 기간에 군인들에게 사용되어 그 효과가 확실하게 입증되었고, 말라리아 퇴치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게 됩니다.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전후 전세계에 걸쳐 대규모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뉴욕의 길거리에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의 궁벽진 산골에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얗게 DDT 가루를 뒤집어쓴 사진이 꽤나 오랫동안 세계보건기구의 자랑스런 홍보사진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건강 지킴이로서 소명의식에 불타는 전문가 집단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그것도 전세계가 인정하는 세계보건기구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957년 생물학자인 레이철 카슨은 조류연구소를 운영하는 친구 올가 허킨스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해 여름에 매사추세츠 주정부가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 늪지에 DDT를 살포했는데, 모기는 죽기는커녕 오히려 더 극성을 부리고 엉뚱하게도 새들과 곤충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매사추세츠 주정부는 DDT는 해충 이외의 생명체에게는 매우 안전하다는 것이 이미 과학자들에 의해 입증됐기 때문에 안전하고, 그래서 한 번 뿌려서 모기가 죽지 않는다면 여러 번 뿌려 모기를 박멸시킬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레이철 카슨은 곧바로 진상조사와 연구에 착수했고,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집필을 계속해 마침내 1962년 현대 산업문명의 부메랑 효과를 통렬하게 폭로한, 저 유명한 <침묵의 봄>을 출간했습니다. 레이철 카슨의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DDT를 비롯한 농약과 살충제 등 화학물질은 사실은 살충제가 아니라 살인제이며 생명을 죽이는 독극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침묵의 봄>이 출판되자 대부분의 과학자들과 정부관리, 화학물질과 살충제 제조회사들은 레이철 카슨에 대해 엄청난 공격, 비난, 비판, 심지어는 "히스테리컬한 노처녀"라는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고 퍼부어댔습니다. 이런 공격은 과학의 이름으로, 이른바 전문가의 의견이란 이름으로 갈수록 더 심하게 계속됐습니다. 사실 DDT가 쉽게 분해되지 않고 축적된다는 점을 DDT의 아버지인 뮐러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이를 무시해버렸던 것입니다.
  
  근대의 과학자나 전문가란 늘 이런 식으로 과학자나 전문가로서의 함정에 빠지면서 눈앞의 달콤한 꿀을 핥아먹느라 함정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밧줄이 끊어지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들은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지금 들으면 끔찍할 정도로 무지와 오만에 가득 찬 근거를 들어가며 레이철 카슨을 비난했던 것입니다.
  결국 미국 대통령자문회의가 조사를 벌인 결과 레이철 카슨의 주장은 모두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미 연방의회는 시민의 안전을 무시하고 살충제 사용을 묵인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DDT의 제조가 금지됐습니다. 그리고 레이철 카슨을 비판하고 반대했던 <타임>지는 레이철 카슨을 지난 100년간의 시기에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죽을 때까지 자기 몸 속에 다량의 DDT를 어찌할 도리 없이 '소유'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것은 끔찍하게도 자식들에게까지 전달됩니다. 제조 자체가 금지된 지 30년이 지난 2005년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에서도, 빅토리아 호에서도, 한강에서도 DDT가 검출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독성 화학물질 오남용의 역사는 비단 DDT에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널리 알려진 또 다른 화학물질인 PCB나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CFC(프레온가스, 여기에도 불소가 포함돼 있습니다)의 역사도 DDT의 역사 못지 않게 대재앙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화학물질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대량으로 만들어 지상에 퍼뜨렸습니다. 그리고 이들 화학물질은 고스란히 인간의 체내에 들어와 이제는 이른바 환경호르몬으로서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중입니다.
  
  불소화합물 또한 이처럼 사람이 제조한 화학물질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돗물 불소화에 사용되는 불소는 자연상태에서 존재하는 불소와는 완전히 다른, 위에서 예로 든 DDT나 CFC처럼 인간이 생산한 맹독성 화학공업 물질입니다. 물론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하시는 분들은 불소가 독성물질이긴 하지만 소량일 경우 충치예방 효과가 있다고 말을 하고, 그래서 수돗물 불소화 사업도 정확한 법률용어는 '수돗물 불소농도 조정사업'이라고 하지만 말입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 장향숙 의원이 발의한 수돗물 불소화법(구강보건법) 개정안 때문에 다시금 불소화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프레시안>에서 논쟁의 장을 마련해 다양한 찬반의견이 개진되었습니다. 이는 아주 바람직한 일입니다.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쟁점이 생겼을 때 일반 시민들에게 충분히 서로 다른 의견을 들어보게 하는 것은 어떤 선택이나 결론에 앞서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법과 제도의 시행에 앞서 이해관계 당사자의 치열한 입법 찬성 및 반대의 로비를 넘어서는 시민사회의 개입이 적극 요구됩니다. 이른바 거버넌스(공치)라는 관점에서도 활발한 의견교환과 여론개입은 매우 적절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분명히 수돗물 불소화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장향숙 의원을 비롯하여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하는 중심 세력이랄 수 있는 건치(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와 치과협회,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무슨 사심이 있어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분들도 장애인 인권운동을 했거나, 특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건치처럼 수돗물 불소화가 빈곤계층과 소외계층의 구강건강에 유익하다는 신념을 갖고 수돗물 불소화를 지지하거나 추진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필자는 수돗물 불소화 찬성 쪽의 의견도 가능한 열린 마음으로 들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논쟁이 진행되면서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하는 분들이 불소의 유해성 문제와 함께 민주주의의 문제를 논하게 되면서 수돗물 불소화법 개정안이 마치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이는 적절한 제도인 양 주장한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나아가 수돗물 불소화 반대측이야말로 다수의 선택권 보장을 방해하는, 과반수 찬성의 민주주의 의사결정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극단론자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 어이없는 '뒤집어씌우기'이며, 민주주의의 개념을 이상하게 거꾸로 세우고 이상하게 헝크려뜨리는 기괴하고 이상한 주장입니다.
  
  먼저 문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번 개정안의 핵심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구강보건법 신·구 조문 대비표>

현행/개정안
  
  제10조(수돗물불소화사업의 계획 및 시행) ①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시행하고자 하는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한국수자원공사장은 다음 각호의 사항이 포함된 사업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②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한국수자원공사장은 공청회 또는 여론조사 등을 통하여 관계 지역주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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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조(수돗물불소화사업의 계획 및 시행) ①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다음 각호의 사항이 포함된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시행하여야 한다. 다만,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실시한 지역주민 여론조사 결과가 과반수 이상의 반대의견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광역상수도를 관할하는 한국수자원공사장에게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요청한 경우 한국수자원공사장은 이를 실시하여야 한다.
 

 

우선 개정안의 과반수 반대라는 단서 조항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조항입니다. 이것은 언뜻보면 국민의 '저항권'을 존중하는 아주 희한한 조항같습니다만 사실 민주주의와는 전혀 배치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인 민(民)이 주인이 되어 나라와 사회를 지배하는 긍정의 제도이지 민의 저항을 유도하는 부정의 제도가 아닙니다.

과반수의 찬성으로 시행한다는 것과 과반수의 반대로 시행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게 그것인 동어반복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영어로 포지티브 방식과 네거티브 방식은 하늘과 땅의 차이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의결정족수로서 과반수 참석에 과반수 찬성을 이야기합니다. 의결정족수를 말하는데 과반수 참석에 과반수 반대로 의결한다는 얘기를 필자는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국회 누리집에 들어가 법안을 검색해서 "과반수 이상의 반대"라는 말을 넣어 검색해 보았더니 검색결과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과문해서 단정하기는 뭐하지만, 그 많고 많은 법안 가운데 이런 조항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불을 보듯 뻔한, 명백한 강제입법입니다. 그것도 파시스트식 강제입법입니다. 이것을 강제입법이 아닌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입법이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상식이 없는 파렴치한 주장입니다. 지금처럼 수돗물 불소화에 대해 찬반양론이 갈려 있는 상태에서 입법을 통해 의무규정으로 시행하겠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강제입법입니다. 여론조사를 해서 과반수가 반대하면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조항은 쉽게 말해 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도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들여 국민의 저항을 유도하는, 아니 국민의 저항을 원천봉쇄하는 아주 치졸한 사기극입니다.
  
  과반수 이하의 지지로 집권한 나치의 히틀러는 누구보다도 대중선동에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즐겨 사용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군중심리학에서 다중이 모여있을 때 반대하는 것은 찬성하는 것에 비해 몇 십배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독일 국민 전체의 과반수에서 훨씬 못미치는 지지로 원내 제1당이 된 나치당과 히틀러가 집권하자마자 의회를 해산하고 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주의는, 아주 좁혀서 선거 민주주의, 절차 민주주의로 국한해서 본다고 하더라도,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긍정의 제도여야 하지 과반수 반대라는 부정의 제도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자치단체장을 뽑을 때 찬성표가 많은 사람을 뽑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지, 후보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반대표를 집계해서 반대표가 가장 적은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선거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되새길 필요도 없이 대의제 민주주의는 문제가 많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나마 삼권분립과 정당제도, 지방자치의 확대와 시민사회의 활성화 등을 통해 그같은 선거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민주주의를 말하려면 기존의 법을 그대로 놔두면 하등의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주민의 선택권도 보장이 되고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주민의 과반수가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하는데 자치단체장이 시행하지 않을 경우가 있어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한다면 그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돗물 불소화를 강제로 입법하려다보니, 수돗물 불소화를 최상위의 가치로 놓고 모든 문제를 보다보니, 이처럼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어긋나는 짓을 저질러 놓고 나서도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전도된 주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문제와 함께 유해성 문제에 대해서도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하시는 분들의 주장에는 위험한 지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불소화가 유해하다는 근거보다 무해하다는 근거가 훨씬 많은 상황에서는 불소화를 추진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생체실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불소의 독성에 대한 찬반논쟁이 있는 그 순간부터 불소화는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와 이른바 과학자, 전문가들이 먼저 해야 할 시급한 일은 과연 불소화가 유해한지 무해한지 광범위하고도 깊이있게 조사연구하는 일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수돗물 불소화에 사용하는 불소는, 상수도 정수장에 투입되는 불소는 DDT나 CFC처럼 공장에서 제조된, 불화규산과 불화나트륨이라는 유독성 화학물질입니다. 불화규산은 우리나라의 경우 비료공장의 굴뚝 세정시설에서 부산물로 얻어지는 독성 산업폐기물이며, 그것도 포장용기에 해골이 그려져 있는 명백한 산업폐기물입니다. 남해화학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불화규산(F6H2Si)에 대해 흡입, 피부접촉, 눈접촉, 섭취 등의 경우 유해 위험성과 응급조치 요령, 폭발사고와 누출사고 시 대처요령 등까지 자세하게 적어놓고 있습니다.
  
  2002년 1월 4일 안양시 학의천에서 물고기 수천 마리가 집단으로 떼죽음을 당해 떠오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경찰은 사건의 원인을 추적했습니다. 경찰이 밝힌 사건의 원인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의왕시 상수도 사업소에서 정수장 약품처리 과정의 실수로 불소를 과다하게 투입하여 학의천으로 방류한 결과 각종 물고기들이 그렇게 참혹하게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 불소가 과다투입된 수돗물이 그대로 시민들에게 보급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48년 10월 말, 미국의 명절인 할로윈 데이에 발생하여 더욱 그 악명이 널리 알려진 대재앙, 세계 최초로 기록된 대기오염 사고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공업도시 도노라에서 일어났습니다. 며칠 만에 20여 명이 죽었고 한 달 동안 70여 명이 사망하고 6천여 명의 환자가 발생한 최악의 사고였습니다. 도노라 사건의 초기 주범이 다름아닌 불소화합물입니다. 그리고 한때는 미국에서 20여 종의 주요 대기오염 물질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배상책임의 손실을 기업에 안겨준 독극물이 다름아닌 불소화합물입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그 운반과정에 극도의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는 물질도 다름아닌 불소화합물입니다. 이런 독성 화학물질이 '기적의 충치 감소제'로 변신하는 과정에는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원자탄을 만들면서 부산물인 불소화합물이 원자탄 제조공장 인근의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중독시키는 점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미국 정부와, 대기오염과 독극물중독 배상책임에 시달리고 있던 듀퐁이나 멜론같은 다국적기업의 추악한 결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치과의사들은 차라리 이들의 희생양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이런 화학물질을 수돗물에 넣을 때는, 물론 소량이면 충치를 예방한다고 불소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말하지만, 먼저 충분한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안전하다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얘기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DDT나 CFC의 경우처럼 이른바 과학자나 전문가의 오만이나 무지의 소치일 수 있습니다.
  
  계층의 문제를 지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수돗물의 안전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마시지 못하고 생수를 사서 마시는 이상한 도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는 극빈층과 소외계층은 그나마 돈이 없기 때문에 생수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수돗물을 마십니다.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하는 분들은 이들 중하층, 특히 취약계층을 위해서라도 불소화가 강제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주장은 소외계층의 구강건강을 걱정하는 그 근본 취지는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주장은 자칫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범죄발생을 줄인다는 공익 목적을 위해서는 흑인들에게 불임수술을 강제로 시술해야 한다는 인종차별 주장이나 거의 다름없게 됩니다. 국가가 강제로 시행하는 전염병 예방사업과 비교하는 분도 있었지만, 이것은 상식 이하의 말이 안되는 얘기입니다. 충치는 법정 전염병이 아닙니다. 이런 주장은 그 옛날 국가가 나서서 강제로 DDT를 뿌리던 때의 얘기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이미 심각한 정도를 넘어서 차상위 계층까지 600만~700만을 헤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빈곤층 자체를 없애거나 줄이려는 노력이 근본 대안이겠지만, 빈곤층의 구강건강을 위한 현실성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수돗물 불소화는 아닙니다. 굳이 미국 치과의사협회가 권하는 1일 불소투여 권장량(6개월 이하의 신생아에게는 0ppm, 6~12세 1ppm: 수돗물 불소화 농도는 1ppm)을 들지 않더라도, 노인과 환자에게는 불소의 독성작용이 특히 민감할 수 있다는 미 독성물질 질병등록국(ATSDR, 1993)의 경고를 들지 않더라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불소화된 수돗물은 혜택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는 대재앙이 될 위험성이 다분합니다.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구강보건을 생각한다면 우선 치과의 문턱부터 대폭 낮추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치과치료는 너무나 비싸서 빈곤층은 물론 웬만한 중산층조차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치과진료의 혜택이 더 넓게 돌아가도록, 너무나 많은 치과 치료 항목이 보험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는 현실부터 뜯어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비싼 치과진료비부터 낮추어야 합니다.
  
  지구의 딸, 지구의 시인이었던 레이철 카슨은 <침묵의 봄>의 마지막을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나오는 두 갈래 길과는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건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평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습니다. 수돗물 불소화는 쉽고 편안한 고속도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재앙이 절벽처럼 입을 벌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라옵건대 좋은 뜻에서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하는 분들도 이 점을 깊이 성찰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사무국